“허를 찔린 기분이다.”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설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정부 당국자들이 보인 반응은 한마디로‘의외’라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름 앞둔 상황에서 김위원장의 중국방문은 그만큼 예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방중이 전혀 뜻밖인 것만은 아니다.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그의 방중 가능성은 오래 전부터 예고돼 왔다. 지난 3월 5일 그의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 방문은 완융상(萬永祥)평양 주재 중국대사의 이임 환송연 참석 형식을 띠었지만 사실상 중국 방문을 위한 사전포석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또 최근 리펑(李鵬)전인대 상무위원장의 5월 방북 무산 이유도 북한이 정상회담 준비에 바쁜 탓으로 돌려졌지만 사실상 이번 그의 방중 일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김위원장은 왜 이 시점에 중국방문을 결행했을까. 무엇보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행사를 앞두고 그가 중국으로부터 무엇인가 확실한 인증을 받아두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 관계자는“대외개방에 따른 체제불안의 위험을 완전히 떨굴 수 없는 북한이 중국과의 전통적인 혈맹관계를 복원함으로써 정상회담 후의 체제불안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려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김위원장 자신이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직접교감함으로써 의제 설정과 논의 수준을 결정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한·미·일 3각 공조에 대비되는 일종의 북·중 공조인 셈이다.
남·북한과 별도의 트랙을 설정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한국과의 협력, 북한과의 공조를 통해 한반도 정책을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특히 김위원장은 이번 방중을 통해 중국의 경제지원 가능성을 타진,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남북경협의 수준을 설정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하겠다.
이번 방중을 통해 국제사회에 북한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뚜렷히 각인시키면서 북한의 대외 개방의지를 과시하는 효과도 노린 듯하다. 1983년 김일성(金日成)주석을 따라 중국을 방문, 덩샤오핑(鄧小平)과 만난 경험이 있는 김국방위원장이 개인적 위상을 한껏 높이는 계기로 중국방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국제적 기대치에 부담을 느끼고 그 비중의 희석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종의 물타기다. 이밖에 권력안정의 마지막 수순인 7차 당대회가 9월로 예정돼 있어 정상회담후에는 일정이 빡빡하다는 점도 방중을 앞당기는데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