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아카시아꽃을 받아들고 동요 ‘과수원길’을 부르던 치매노인들은 노래가 끝나자 고향마을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고향 평양에 벚꽃나무가 많았다며 기억을 더듬는 할아버지도, 아카시아꽃으로 전도 부치고 술도 담그기도 했다면서 고향집 모습에 대해 말하는 할머니도 있었다.치매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치료(music therapy)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고 있다. 음악활동을 매개로 치매환자들의 지적 능력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 모짜르트나 바흐의 음악이 어린이의 정서 두뇌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굳이 치매환자에 국한시키지않더라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음악을 듣고 직접 부르고 연주하며 음악에 맞춰 운동하고 노래를 만드는 등 음악 활동을 통해 신체적 인지적 능력을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음악치료연구소 김혜송소장은 “음악 자체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음악은 노인들의 퇴화한, 혹은 상실한 능력을 끌어내는 실마리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치매노인들을 위한 음악치료
기억력, 현실 인식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노래의 ‘주제’와 관련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방향으로 실시한다. 동요 ‘과수원길’로 음악치료를 실시하는 경우, 고향마을을 묘사하도록 해 과거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주고 동시에 직접 아카시아향을 맡으며 5월의 계절감도 인식시키는 것이다.
개인의 체험과 노래의 주제가 잘 맞아떨어지면 기억력 집중력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김소장은 “백마강과 관련된 노래로 음악치료시간을 가졌더니 고향이 부여인 할머니가 백마강을 아주 상세하게 기억해내면서 친정에 대해서도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민향(미국공인음악치료사)씨는 “음악활동을 관장하는 뇌부위와 치매환자가 손상당한 뇌부위는 다르다. 이미 상처받은 부분을 회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음악을 통해 남아있는 뇌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음악은 어르신들이 젊었을 적에 많이 불렀음직한 것을 주로 사용한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20∼30대를 되살려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것이다. 특히 치매노인의 경우, 30대 이후의 음악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노화로 인한 상실감을 잊게 해주기도
북처럼 간단한 타악기 연주, 음악과 함께하는 운동을 통해 오십견이나 관절염을 호소하는 어르신들도 보다 유연하게 몸을 움직이게 된다. 평상시보다 팔을 더 많이 올리거나 허리를 보다 깊숙이 굽히는 것도 가능하다.
이민향씨는 “음악은 고통을 잊게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뇌졸중이나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물리치료를 받거나 운동을 할 때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면 잠시나마 고통을 덜게 된다”고 설명했다.
은퇴한 어르신들의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서는 8∼10명으로 소그룹을 이뤄, 간단한 연주를 실시하는 방법도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데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시켜 줌으로써 노년기 사회적 역할 상실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다.
■노인을 위한 음악치료는 이렇게
김혜송소장은 “음악을 모티브로 노인들이 찾아낸 지적 신체적 능력을 놓치지 않고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음악을 듣고 따라하는 것보다는 어르신들과의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음악선정에서는 개개인의 성향, 살아온 내력을 고려해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한창 젊을 때 많이 접했을 음악이 기억력을 자극하는데 효과적이다. 흘러간 대중가요나 ‘과수원길’‘오빠생각’같은 동요, ‘아리랑’‘도라지타령’등의 민요가 대체적으로 무난하며, 어르신이라고 느린 박자의 음악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활발하고 경쾌한 음악을 적절히 섞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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