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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생텍쥐페리 탄생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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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생텍쥐페리 탄생100년

입력
2000.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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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바라봐 난 저별들 중…""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우주의 여러 행성들을 여행하다 일곱번째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 어린 왕자. 그는 높은 산에 올라가 지구를 바라본다.

“온통 메마르고 뾰족뾰족하고 험하고.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이라곤 없어. 남이 한 말만 되풀이하고…”

어린 왕자는 지구를 ‘참 얄궂은 별’이라고 꼬집었다. 이 얄궂은 별에 사는 상상력 없는 인간들은 아직도 어린 왕자가 말한, 사막에 감추어진 우물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우물을 찾아가는 힘겨운 도정이야말로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의 영원한 삶의 숙제인지도 모른다.

6월 29일은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탄생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 아직도 베일에 가려있는 그의 죽음만큼이나, 그의 탄생이 세기의 전환점이었던 1900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상징적 의미를 던진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조국인 프랑스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는 갖가지 행사가 열려 생텍쥐페리의 삶과 문학에 대한 재조명 작업과 추모 열기가 일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가 서울대 박성창 교수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됐다(비룡소 발행).

현재 국내에 번역된 ‘어린 왕자’의 판본은 무려 92종. 1970년대 초 소개된 이후 100만부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다. 생텍쥐페리가 얼마나 사랑받는 작가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1912년 그의 인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동반자 역할을 한 비행기를 처음으로 알게 되고, 열아홉 살 때는 미술학교에서 공부한다. 그가 직접 그린 어린 왕자에서 볼 수 있는 솜씨는 바로 이때 익힌 것이다.

우편물을 비행기로 발송하는 회사 등에서 일하며 ‘야간비행’(1931년) ‘인간의 대지’(1938년)를 쓴다. 공군에 입대, 2차세계대전 당시는 정찰비행대원으로 출격했고 1940년 동원해제돼 미국으로 건너가 ‘어린 왕자’(1943)를 발표했다.

1944년 7월 31일 당시 세계 최고 연령의 비행사로 이미 허락된 출격횟수를 넘기고도 마지막 출격 허락을 받아 프랑스 남부 해안 그레노블_안시 지역으로 비행한 그는 그러나 지구라는 별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사후 56년이 지나도록 미스터리에 빠져있다.

지난 27일 프랑스 르 피가로지는 그의 정찰기가 추락한 마르세유 연안에서 비행기 잔해가 발견됐다고 보도, 탄생 100년을 앞두고 다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생텍쥐페리는 일반적으로 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활동했던 ‘행동주의’ 작가로 분류된다. 하지만 ‘어린 왕자’가 보여주는 세계관에서 알 수 있듯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인간 영혼의 회복을 꿈꾸었던 영원한 동심의 작가이기도 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고도 여전히 혼란은 계속되고 있는 세상에서 그의 탄생 100주년이 의미를 더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여우의 지혜와 뱀의 분석

● 내가 읽은 어린 왕자

‘어린 왕자’의 독자에게 여우는 매혹적이다. 어김없는 현자의 모습을 지닌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이기’라는 이름으로 ‘관계 맺기’의 가르침을 실습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기가 사귀는 것에 대한 기억을 마음 속 깊은 곳에 쌓아둔다는 것이다.

이 여우가 의례에 대한 설명을 시간에 대한 설명으로 대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례란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하고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확실히 추석날은 다른 날과 다르다. 그날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쌓아둔 기억, 우리가 사물들에 쌓아둔 기억이 활성화해 세상이 갑자기 화평해진다.

어린 왕자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도 자신의 깊은 기억을 되찾아 자아를 회복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여우는 제 친구에게 떠나온 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설득할 수는 있었지만, 어떻게 돌아가야 할 것인가는 말해주지 않았다.

어린 왕자가 뱀을 처음 만났을 때 대화보다는 침묵이 더 길었다. 게다가 뱀의 말은 수수께끼와 같았다. 뱀은 누구든지 자기가 건드리기만 하면 그가 ‘태어난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며, 왕자가 자기 별을 정말로 그리워하면 도와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자기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물론 죽는다는 말이다. 뱀의 말은 여우의 말처럼 마음으로 이해해야 할 말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해석해야 할 말이다.

그것은 감동해야 할 종류의 말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작품이 아니라 텍스트이며, 현자의 말이 아니라 비평가의 그것이다.

어린 왕자는 여우의 종합적인 가르침에서 비밀한 지혜를 얻었지만, 그 실천을 위해서는 뱀의 분석을 선택했다. 오두막보다 더 크지 않은 별에 살던 이 우주의 시골뜨기는 벌써 여러 계층의 인간들을 만나고, 그들이 어떻게 소외되어 있는가를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 자신도 더 이상 천진난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순수하지만 순진하지는 않다. 그는 철새들을 줄로 엮고 거기 매달려 별들 사이를 이동하다 마침내 지구에까지 왔지만, 이미 세상의 물정을 아는 그가 이 불확실한 목가적 여행 수단에 더 이상 기대를 걸 수는 없다.

그는 뱀에게 물리기로 결심한다. 극단적으로 과격한 이 귀향의 방법은 분석적인 그만큼 확실하고 효과적이다. 뱀에 물리기는 일종의 기계적 충격과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충격 그 자체가 아닐 것이다. 눈 앞의 보자기만한 시간밖에는 다른 시간의 기억을 허용하지 않는 이 문명 속에서 인간이 자기 기억과 자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칼로 자르는 것과 같은 자기 각성과 자기 희생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텍쥐페리는 아마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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