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대 핵강국 미국과 러시아의 ‘핵안보’를 둘러싼 외교적 샅바싸움이 한 치 양보 없이 팽팽하다.미국은 이른바 ‘깡패국가’이론을 내세우며 명실상부한 핵전력 우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고, 러시아는 이를 새로운 군비경쟁 촉발행위라며 저지한다는 자세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9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비회원국에 대한 핵 물질과 기술, 장비등의 수출을 허용한다고 밝힘으로써 미국과의 핵 외교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그는 비록 ‘교역 당사국이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을 경우’라는 조건은 달았지만 교역대상으로 쿠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의 국가들을 명시했다. 이같은 결정은 1992년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내렸던 핵 관련 기술의 수출 금지조치와 정면 배치되는 것으로, 푸틴의 ‘강한 러시아’전략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러시아는 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00여기를 외국의 상업위성 발사를 위한 위성발사체로 전용할 방침이며 그 첫번째 위성을 10개월 안에 쏘아 올릴 것이라고 이타르타스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말이 상업위성이지, 이 역시 엄밀히 따지면 핵기술 수출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핵무기를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은 구체적으로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구상과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개정,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Ⅱ·Ⅲ)등에서 노골화한다.
우선 미국은 북한, 이란 등을 ‘깡패국가’로 규정, 이들의 미사일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NMD 체계를 갖추어야 하고 이를 합법적으로 뒷받침 하기 위해 1972년 소련과 체결한 ABM협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정을 바꿔서라도 알래스카 등지에 요격체계를 갖추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 보면 이는 전 세계 핵전력을 미국의 손아귀에 넣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로인한 새로운 군비경쟁도 불보듯 뻔한 일이다.
때문에 러시아는 다각적인 외교채널을 통해 이를 강력 반대하고 있고, 유럽과 중국 등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이 문제는 미국내에서조차 막대한 비용 등을 이유로 한 반대의견이 많아 빌 클린턴 행정부가 잔뜩 불편하다.
미국은 특히 자신들이 국제사회에 제안했던 CTBT 비준안이 지난해 10월 상원에서 거부됨으로써 스스로의 명분에 흠집을 남겼다. 반면 러시아는 지난달 14일 국가두마(하원)가 STARTⅡ를 전격 비준한 데 이어 CTBT 비준안도 통과시킴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선점했다. 러시아는 이를 내세워 STARTⅢ를 통한 추가 군축을 종용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위력 확보 차원의 기본적인 전략핵무기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며 미국을 은근히 위협하고 있다.
결국 양측 모두 ‘국제사회의 이해’와 ‘세계평화’라는 판에 박힌 외교수사를 쓰고는 있지만 ‘핵전력=국력’이란 자국 이기주의를 탈피하지는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안보 주도권은 이미 미국쪽에 상당 부분 쏠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홍윤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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