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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어느 사이버 욕쟁이의 '지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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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어느 사이버 욕쟁이의 '지하드'

입력
2000.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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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세계에서 '지하드'(Jihad)는 '성전'을 뜻한다. 먹자골목 음식점 간판에 '원조'라는 말이 흔하게 걸려 있듯이, 이슬람 투쟁단체이름에도 지하드가 들어간 이름이 많다. 이 단어에는 사생결단식의 비장함이 담겨있다. 오합지졸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전사들이 지하드를 통해 구소련 점령군을 몰아냈던 저력도 이같은 결의에서 나왔다.사이버 세상에도 지하드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그룹이나 게시판 등에서 죽기살기로 싸우는 현상을 말한다. 세계 네티즌 사이에서도 'Holy war'로 통한다. 설전의 강도가 심하기 때문에 '불꽃전' 이라고 부른다. 사이버성전의 열기는 결코 실제 세상에 뒤지지 않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만, 사이버 세상에서는 상대가 보이지 않으니깐 훨씬 용감해지기 쉽다. 그래서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끼리 마주치게 되면 곧장 육두문자가 공용어가 된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벌이는 사이버포럼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다. 이런 게시판을 영어로 내건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진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이버 세계에서의 멱살잡이가 법정에서 끝장을 본 최근의 사건을 당연하게 보는것도 이해가 간다.

서울지법 동부지원 민사 7단독 홍준호 판사는 29일 PC통신 게시판에서 '성전'을 벌이던 한쪽 당사자에게 명예훼손 사실을 인정해 200만원의 위자료지급 판결을 내렸다. 무슨 엄청난 대의명분을 둘러싸고 벌인 싸움이 아니었다.

원고는 어느 가수의 펜클럽 회원이었고, 피고는 원고와 같은 '반미치광이' 펜클럽 회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이번 판결이 무절제한 '사이버폭언'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표현의 자유에 상당한 위축을 불러올 수 도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XXX에게 환장한 사람들" "기획사에 매수된 사람같다" 정도를 법적으로 규제한다면, 그보다 몇배 심하게 구는 온라인상의 '흉악범들'은 어떻게 다룰 것인다. 법원은 원고가 청구한 3,000만원의 위자료 가운데 200만원만 인정했다. 액수로만 보자면 '찰과상' 정도의 언어폭력이 행사됐다는 얘기다.

물론 이번 판결의 빌미를 제공한 피고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자기 의사와 배치되는 견해를 옹호한다고 해서 격결한 언사로 상대를 비방한 행동은 네티즌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게도 억울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사이버라는 신세계의 규율을 잘 모르고 저지른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라면 멱살잡이에 불과할 다툼을 의조瓚括막? 끌로나와 인터넷경찰에 맡겼던 원고의 행동도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원고의 소송제기는 성숙한 네티즌의 중요한 덕목인 너그러움을 잊은 처사였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말다툼은 사이버세게의 한 특징인 '감정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데서 오는 흔하고 흔한 '불꽃전쟁' 가운데 하나였음을 상기할 때 더욱 그렇다.

인터넷 항해는 흔히 현실세게에서의 운전과 비교된다. 평소에는 얌전하던 사람도 운전대를 잡고 거리에 나서면 욕쟁이가 되어버리듯이 온라인 토론방에 들어서기만 하면 격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싸움 닭'이 의외로 많다. e-커뮤니케이션 시대라고 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과 규범을 팽개쳐서는 안된다. 죽기살기로 '성전'을 벌이더라도 온라인상에서 해결을 보자. 이처럼 이상한 재판은 한번으로 족하다.

이상석 인터넷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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