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포연 없는 세상을 위하여단호한 반혁명적 입장을 견지하며 생애의 대부분을 망명객으로 보냈던 조제프 드 메스트르 백작은 ‘프랑스에 관한 고찰’(1796)이라는 책에서 전쟁이 “인류의 통상적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에서 평화의 시기는 극히 짧았고, 그것마저도 대개는 새로운 전쟁을 위한 준비 기간에 지나지 않았다.
호모 사피엔스, 곧 ‘지혜로운 인간’의 지혜는 무엇보다도 다른 호모 사피엔스를 어떻게 살해할까를 궁리하는 데 쓰여왔다. 부족과 국가가 형성되고 권력의 매혹을 사람들이 깨닫게 된 뒤, 전쟁은 가장 손쉬운 갈등 해결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전쟁은, 일정한 규칙이 준수되기만 한다면, 문명인들끼리의 갈등을 해결하는 썩 괜찮은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후(主後) 세번째 천년의 들머리에도 잠재적·현재적(顯在的) 분쟁 지역들은 세계 도처에 있다.
인간의 슬기는 긴 역사를 통해 살인의 수단을 바윗돌이나 창에서 세균 무기나 중성자탄으로 바꾸어 놓았다.
전쟁은 둘 이상의 서로 대립하는 국가, 또는 이에 준(準)하는 집단들이 군사력과 그밖의 보조 수단들을 사용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하는 행위 또는 상태다.
국제법은 전통적으로 전쟁을 합법적인 것, 곧 자위전쟁과 불법적인 것, 곧 침략전쟁으로 나누고 있지만, 이런 분류는 현실적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막연한 도덕적 기준에 의해 전쟁을 ‘정의의 전쟁’과 ‘불의의 전쟁’으로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독립전쟁이나 혁명전쟁이나 종교전쟁의 주체는 말할 것도 없고, 식민지전쟁이나 예방전쟁까지를 포함해서 모든 전쟁들의 주체는 자신들의 전쟁이 합법적이고 정의롭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추축국의 승리로 끝났다면, 미국과 소련이 이끈 연합국의 전쟁 행위는 불법이자 불의로 규정되었을 것이다.
18세기 말 칸트가 영구평화론을 주창한 이래 반전평화주의는 많은 이상주의자들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고, 특히 지난 세기에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계기로 커다란 운동량을 얻었다.
1928년 파리에서 프랑스·미국·영국 등 15개국이 체결한 부전조약(不戰條約), 이른바 켈로그-브리앙 조약은 국가 정책 수단으로서의 전쟁이 불법임을 선언함으로써, 국제법의 수준에서 전쟁포기 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
전쟁 포기의 정신은 국제연맹 규약과 국제연합 헌장의 밑받침이기도 하다. 국제법은 전쟁범죄의 범위를 전투법규 위반 등의 일반적 전쟁범죄와 침략전쟁 수행 등의 ‘평화에 대한 죄’를 넘어서 민간인에 대한 집단적 살해와 노예화 등 ‘인도(人道)에 대한 죄’에까지 넓혔다. 국내법의 수준에서도 평화주의는 명목상으로나마 보편화하고 있다.
1791년의 프랑스 헌법 이래 많은 헌법들이 자위 목적 이외의 전쟁을 포기한다고 선언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제정된 일본의 평화헌법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일본 국가의 교전권(交戰權)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국제·국내 규범들이 전쟁을 몰아내지는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가까이 인류는 핵무기의 전쟁 억지력(抑止力)에 실린 위태롭고 공포스러운 균형, 곧 전쟁도 평화도 아닌 냉전을 목격했다.
그 시기의 평화는 레몽 아롱의 표현에 따르면 “위기라는 이름의 전쟁 대체물(代替物)이 지배하는 평화”였다. 그 ‘평화’ 속에서도 한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을 체험했다.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냉전이 끝나고 ‘역사의 종언’이 선정적으로 선언된 뒤에도, ‘위기의 평화’와 ‘공포의 균형’은 지표를 부글거리게 하며 국지전을 낳고 있다.
오늘날 안보는 국가들 사이의 전쟁보다는 주로 국내적 분쟁으로 위협받고 있다. 많은 나라의 정부들은 영토를 취득하기 위해 이웃나라와 싸우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점을 점점 더 절실히 깨닫고 있지만, 한 국가 안의 정치적 실체들, 특히 국제 공동체가 선뜻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실체들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 세기 90년대 이래 전쟁, 특히 내전은 아프리카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런 연이은, 그리고 동시적인 분규들은 국민국가 체제 위에 설립된 유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나토, 서유럽동맹(WEU) 등 현존하는 세계적·지역적 조직들이 충분한 질서 유지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프랑스의 국제정치학자 가산 살라메에 따르면, 지금의 유엔은 강대국들이 허용할 때만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잔여조직’(residual organization)으로 남을 위험에 처해 있다.
그 점은 최근 유엔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의 이해가 직접적으로 걸리지 않는 지역에만 군사적으로 개입했던 사실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이런 상황은 강대국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국가들에게 소외감을 심어서, 그들로 하여금 국제 규범과 조직의 수용을 거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살라메는 우려한다.
안전보장이사회 안에서 개발도상국의 대표권을 늘리고, 정책 수립에서 총회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엔헌장을 수정하는 등 유엔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살라메의 제안이다.
어느 영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반전평화 운동에서 교육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교원노조는 평화교육의 이념을 제창했고, 이에 따라 프랑스와 북유럽에서는 전쟁을 긍정하는 교재를 배제하는 운동이 전개된 바 있다.
평화 교육의 일차적 표적은 대중의 심리 안에 잠복한 군국주의적 성향이 돼야 할 것이다. 군국주의는 절대주의 시대의 상비군만이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혁명기의 징병제에 의한 국민군(國民軍)에도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기 국민군의 진보적 성격을 없애고 주로 반혁명적 목적을 위해 군대의 기율과 정서를 국민적 규모로 확대하려는 전체주의 사상이다.
요컨대 군국주의는 사회의 병영화를 꿈꾼다. 군대만이 아니라 민간 사회의 재향군인회, 우익단체, 군수(軍需)자본가 등이 이 군국주의를 떠받치고 있다. 특히 전쟁이 군수자본가의 이해와 연결돼 군산복합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평화 교육에서 되풀이 강조돼야 한다.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흔히 인종이나 종교 사이의 갈등이므로, 반인종주의, 세속주의, 개인주의도 평화 교육의 한 지향점이 돼야 한다. 결국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허는 관용의 확산이야말로 전쟁을 막는 심리적 무기다.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격언은 예나 지금이나 군국주의자들의 금과옥조이지만, 전쟁 준비는 늘 전쟁으로 마무리됐다. 밍밍하고 매력 없는 대책이기는 하지만, 평화 애호의 심성을 가꾸는 평화 교육은 반전평화 운동의 처음이자 끝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
● 클라우제비츠 '전쟁론'
프로이센의 군인이자 군사이론가인 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1832)에서 내린 정의에 따르면 전쟁은 “다른 수단들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연이은 패배로 점철된 나폴레옹 군대와의 싸움에 젊음을 소진한 뒤, 40대 들어 한직(閒職)인 군사학교 교장 일을 하며 ‘전쟁론’을 썼다
. 이 책의 제1장에서 ‘전쟁’을 “적으로 하여금 우리들의 의지를 실행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폭력 행위”로 정의한 클라우제비츠는 이 정의를 더 세련하는 과정에서 전쟁과 정치의 관련을 따진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전쟁은 다른 수단들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정식이다. 크라우제비츠에 따르면 전쟁은 놀이도 아니고, 승리나 위험을 추구하는 단순한 정열도 아니며, 막연히 폭발된 맹목적 열정도 아니다.
그것은 진지한 목적을 지닌 진지한 수단이다. “한 공동체가 수행하는 전쟁-모든 국가들의 전쟁, 특히 문명화한 국가들의 전쟁-은 언제나 정치적 상황에서 나오고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전쟁이 정치 행위인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클라우제비츠가 보기에 전쟁과 정치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즉 전쟁은 정치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고유의 공간이 아니다. 전쟁의 단기적 목표가 군사적인 것이라면 그 궁극적 목표는 정치적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저술은 20세기 역사의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레닌이나 마오쩌둥 같은 혁명가들은 클라우제비츠의 저술에서 전쟁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엄밀한 이론화와 인민 전쟁의 원칙들을 발견해, 그것들을 자신들의 전략·전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글뤽스만에 따르면, 전쟁이 다른 수단들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정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이라는 개념이다.
전쟁이 정치의 계속이라는 것은 근대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여기서 문제는 정치와 전쟁의 주종(主從)관계에 있지 않다. 문제는 그 ‘계속’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전쟁(군사 부문)과 정치(민간 부문)가 언제라도 호환(互換)된다는 데 있다.
즉 군국주의의 위험 또는 ‘전쟁이라는 종교’는 민간 부문을 복종시키려는 군사 부문의 요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군사 부문으로 너무나도 쉽게 변화하는 민간 부문의 자발성에서도 나온다. 엄격한 평화교육이 요청되는 것은 그것 때문이기도 하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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