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음악의 꽃인 ‘영산회상’은 아홉곡의 기악 모음곡이다. 영상회상 중간에 도드리를 넣고 마지막곡 군악 뒤에 천년만세를 붙여 연주하면 가진회상이 된다. 정악의 최고 연주단체인 정농악회가 ‘가진회상’ 음반을 신나라뮤직에서 냈다. ‘가진회상’ 음반은 처음이다.영산회상은 옛 선비들의 사랑방 풍류음악이다. 거문고를 중심으로 가야금·해금·피리·대금·양금·단소·장구가 하나씩 조촐하게 어울리는데, 그윽하고 은은한 가락이 마음의 먼지를 씻어낸다.
세상에 이처럼 느리고 평화로운 음악이 또 있을까. 영산회상의 첫 곡이자 원곡인 상령산을 들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상령산의 아름다움은 느림의 미학에 있다. 20박 한 장단의 한없이 느린 가락이 16분 이상 유유히 흘러, 성질 급한 사람은 듣다가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하지만 마음을 턱 놓고 음악의 흐름에 숨결을 맡기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진다.
상령산을 지나 뒤로 갈수록 템포가 빨라지면서 흥취를 더하는데, 타령·군악에 이르면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어진다. 군악 다음에 붙는 천년만세는 상령산의 점잖음에 비하면 다소 경망스럽게 느껴질 만큼 흥청거린다.
이 음반의 ‘가진회상’ 연주시간은 69분 17초. 생각해보라. 한없이 느리게 시작해 1시간 10분 가까이 쉼없이 이어지는 음악이라니. 속도전을 치르듯 모든 게 바삐 돌아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듣는다는 것은 인내력 시험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산회상의 여유로움과 긴 호흡이 더욱 귀하고 멋지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02)921-0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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