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속 인물-지도자 자질' 혼재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떤 말을 할지, 그리고 어떤 행동을 보일지 등 모든 것이 궁금증 속에서 증폭되고 있다. 김정일은 그만큼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조선인민군들 앞에서 외친 짧은 몇마디와 신상옥·최은희씨 앞에서 한 말 이외에는 김정일의 생생한 육성을 접하기 어렵다.
그래서 김정일에 대해서는 별별 구구한 억측이 제기돼 왔다. 성장 환경과 연관된 해석을 토대로 한 많은 추측들도 돌아다닌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언어능력에 문제가 있다느니, 성격이 급해 말을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일찍부터 후계자로 자라오면서 제2인자가 누리는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에 행동이 거칠어졌고 예의를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있다는 추측도 제기 됐었다. 여기에다 김정일의 독특한 생활 습관과 관련한 여러 소문들이 덧붙여지면서 밤에 주로 일을 하는 습성과 영화와 예술을 즐기는 취미등도 부각됐다.
그러나 최근들어 김정일의 새로운 모습들이 비춰지고 있다. 특히 1998년과 1999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정회장이 묵고 있는 숙소에 김정일이 직접 찾아와 예의를 갖추는 모습에서 은연중 예의를 차릴 줄 아는 김정일의 이미지가 새롭게 각인됐다.
또 일각에서 거론되던 북한 붕괴설이 설득력을 잃어감과 동시에 김정일은 북한을 위기국면에서 구해낼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구축해 가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더욱이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북한을 명실상부하게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공인으로서의 역할도 강조되고 있다.
그 결과 김정일은 우리에게 현재 두 가지 인성과 이미지를 가진 인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김정일에 대한 ‘양가(兩價)감정’이 형성되면서 베일에 싸인 신비한 인물이라는 추측과 한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가 혼재하고 있다.
그동안의 행적을 살펴 보면 김정일은 성격상 자신의 외부노출을 싫어했다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신비와 궁금증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을 관리하는 기술로 이용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서방세계와의 관계에서 이 점을 매우 효과적으로 써먹은 결과, 김정일을 한번 만나는 것을 북한 방문의 성과로 여기게 끔 만들었다.
이 같은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김정일의 신비주의를 불식시킬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 김정일에 대해 혼재하고 있는 평가중 어느것이 옳은 지를 알아 낼 수 있는 단초도 찾을수 있을 지 모른다.
‘곁에서 본 김정일’이 아니라 신비주의에 싸여 있던 김정일을, 그리고 신비주의를 향유했던 모습을 한꺼풀 벗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있다.
북한은 지금 ‘혈(血)의 장막’에 싸여 있다. 김일성_김정일로 이어지는 동안 북한체제는 항일혁명전통의 정통성을 이어받는 것을 지도자의 으뜸 조건으로 삼아 왔다. 북한측이 즐겨쓰는 ‘백두산 줄기’가 바로 이를 상징하는 단어다.
정상회담은 남북 양측의 국가원수가 분단 사상 처음으로 공식 대면하는 자리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김정일의 인물평가 및 인성해석에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직 김정일의 퍼스낼리티를 평가하기에는 자료와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정적 이미지에 기반을 두어서도 안되며 김정일을 능력있는 합리적 지도자로 갑자기 부상시키는 것도 위험하다.
정상회담을 계기로 베일이 다소라도 벗겨진 김정일을 볼 수 있을 것 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이번 정상간의 만남에서 찾을 수 있는 진짜 보따리는 바로 이것 일 수도 있다./김영수 金英秀·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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