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도는 단순한 은붙이가 아니라 부녀자들의 정절과 호국정신이 담겨 있는 혼(魂)의 예술작품입니다”울산 지역 유일의 무형문화재인 임원중(林元重·71)옹은 17살때 사촌형이 은장도를 만드는 모습을 본 뒤 인생항로가 바뀌었다. 농사짓는 일보다 돈벌이가 낫다는 형의 말에 따라 은장도를 접했던 그는 갈수록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일제말 전쟁물자 비축차원에서 은장도 제작이 금지됐을때도 몰래 실력을 다졌다는 임옹은 “한국전때 군인으로 싸운 3년을 제외하고는 51년동안 한시도 은장도를 떼어놓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임옹은 은장도로 큰 돈은 벌지 못했다. 은장도를 ‘정절의 상징’이자 가보(家寶)로 여겼던 전통이 사라져 수요자체가 줄어든데다 제작에 쏟는 시간과 고난도의 기술에 비해 가격은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옹은 이에 아랑곳 없이 2평 남짓한 작업실에 틀어박혀 ‘최고’를 만드는데 정성을 쏟아왔다. 생활고는 부친이 물려준 다섯 마지기의 논에 농사를 지으며 이겨냈다.
오동(금과 은의 합금) 상감에 용과 사군자를 혼합한 12∼18㎝ 크기의 문양을 새겨넣는 그의 은장도는 젓가락 모양의 ‘8각 첨자도’등 8가지 종류(8만∼40만원)에 달한다. 제작공정은 두께 0.6∼0.7㎜인 은의 본뜨기에서부터 용접, 조각 등 100여단계에 달하며, 8각 첨자도의 경우 하루 10시간씩 꼬박 나흘이 걸린다. 이렇게 탄생한 임옹의 은장도는 독특함과 정교함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오동상감의 독창성은 일본까지 알려져 최근 일본의 한 박물관이 임옹의 작업실을 방문, 7개를 주문하고 돌아갔을 정도다.
1998년 봄부터 아들 3명중 손재주가 가장 뛰어난 막내 동훈(東勳·32)씨에게 가업을 잇게 한 임옹은 “은장도 제작기술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 모든 기술을 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의 (052)293-5543
김광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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