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내로라 하는 프로강자들도 때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추어 중급자만 되도 알만한 수를 착각, 바둑을 망칠 때가 있다. 100수안쪽의 단명국(短命局)들이 대개 이런 경우다.
지난 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5기 일본 혼인보(本因防)전 도전7번기 제1국에서 조선진9단이 도전자 왕밍완9단을 불과 59수만에 흑으로 재압했다. 제한시간 8시간짜리 '이틀바둑'이 각각 4시간9분(조9단), 5시간21분(왕9단)을 남겨둔 상태에서 막을 내린 것이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혼인보 도전기 사상 하루만에 대국이 끝난것은 가토마사오9단과 린하이펑9단이 맞붙은 1979년 제34기 도전 제2국(89수만에 린9단 불계승)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바둑판 위에 오른 돌의 숫자로는 혼인보 사상 가장 짧은 단명국 기록이다.
이번 바둑 역시 한쪽(왕민완)이 초반전에서 대착가을 하는 바람에 단명 승부가 불가피했다.
흑에 의해 단수로 몰린 중앙의 백마는 언뜻 우하귀의 백 5점 때문에 축이 성립할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아마추어 3급 정도만 되도 알 수 있는 축이다.
축몰이를 하다 백4에 부딪혀도 흑이 '가'의 곳으로 막으면 백'나'로 탈출해도 흑'다'백'라'흑'마'로 째고 나가면 다시 축으로 몰리게 된다.
백은 최소한 52로 흑49를 단수친 뒤 탈출을 모색했어야 하는데 왕9단은 좌변 흑돌의 봉쇄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백58을 놓을 때까지만해도 백돌이 축이 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중앙 백마가 고스란히 흑의 수중에 들어가서는 대세가 크게 기울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프로기사들은 오히려 쉬우면 쉬울수록 실수를 범할 때가 있다"며 "고차원 수학문제에만 매달리다 간혹 일차방정식에서 헷갈리는 경우와 마찬가지"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창호'귀曲死'단명국
어이없는 실수로 단명국을 초래하는 예는 국내 바둑계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신산(神算)'으로 불릴만큼 완벽한 수읽기와 판단력을 자랑하는 이창호9단도 예외는 아니다. 이9단은 올 1월 10일 열린 제11기 기성전 도전3번기 제1국에서 아주 초보적인 사활문제를 착각하는 바람에 도전자 최규병9단에게 93수끝에 불계패를 당했다.
이날 대국에서 백을 쥔 이9단은 초반 최9단의 세력작전을 분쇄, 좌하귀에서 적의 대마를 수중에 넣으며 안정적 승리가 예상됐으나 우하귀에서 '귀곡사'를 착각, 백대마를 흑에게 헌상하면서 만방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9단을 상대로 역대전적 16전16패를 당해온 최9단이 생애 첫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이창호는 이 외에도 1988년 제28기 최고위전 도전1국과 1992년 제4기 기성전 도전 3국에서 스승 조훈현9단에게 각각 80수, 83수만에 불계패를 당한 전력이 있다.
■5분만에 46수 단명국
국내 바둑계에서 가장 짧은 수로 끝난 바둑은 1983년 제19기 패왕전 본선에서 나왔다. 당시 김인9단은 상대 김동명6단이 초반전에서 결정적인 패착을 한데 힘입어 손쉽게 대마를 포획, 단 43수만에 흑불계승을 거뒀다.
이 기록은 1978년 제4기 기왕전 본선에서 조훈현9단이 단5분을 소비하고 이강일4단에게 46수만에 불계패한 기록을 5년만에 경신한 것으로 현재까지 공식기전 최단명기로 바둑사에 올라 있다.
실수라기 보다는 바둑 모양에 대한 나름의 미학 내지는 개성때문에 단명패를 자주 당하는 기사들도 있다. 작고한 김종법4단이나 일본의 가지와라9단은 유난히 결벽증이 심해 포석단계에서 단지 바둑모양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30여수만에 돌을 던진 경우도 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69년 제9기 최고위전 도전 제5국에서 강철민4단에게 80수(국내 도전기 사상 최단명국)만에 돌을 던진 김인9단이나 일본 오다케 히데오 9단같은 낭만파 기사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그러고보면 초반 열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길 잘하는 서봉수9단과 같은 '잡초류 기사'에게 단명국 패배가 거의 없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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