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때 운동권이었던 내 친구는 젊음을 감옥에서 보낸 탓에 얼마전까지 남편과 함께 노점상을 했다. 내 환자 중에도 학생운동에 모든 정열을 쏟아 부운 후, 개인적으로 매우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최근들어 몇몇 인물들이 갑작스러운 스타로 부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작 상처받고 땀흘린 이들은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느라 허덕이고 있는데 엉뚱한 이들이 시류에 편승해서 그 과실을 따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솔직히 했다. 냄비 근성이 있는 우리 언론과 대중들이 급하게 만들어준 그들의 순수한 이미지도 당연히 믿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의 능력을 검증 받지 못한 것은 물론, 별다른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단체를 이끈 경험도 없음에도 얼결에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공인이 된 것이 아닌가 의심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비슷한 우려를 했기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급조된 스타들에 대한 우려와 회의를 공적인 자리에서 표현했다가는 시대착오적인 수구세력이라고 사정없이 매도당할까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들도 사실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나친 비유라 할지 모르겠지만 히틀러는 20세기 들어 매스컴을 이용한 대중조작에 가장 능한 지도자로 꼽힐 정도로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는 절대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다. 그때까지의 기성정치인들을 과격한 목소리로 비판하는 그의 열띤 자세와 그가 주장하는 전투적인 민족주의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으로 환영받기도 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이끄는 대로 움직였던 당시 독일인들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히틀러 자신도 심리적으로 매우 심각한 이상이 있는 병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후에 증언해 주고 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의 잘못으로 모든 시민 단체나 386세대들을 히틀러와 비슷하다고 매도한다면 이는 옳은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급조된 진보적인 젊은 지도자들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단순하게 투사하는 긍정적 이미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오히려 몇몇 운동가들이나 정치인들의 실상이 투명하게 드러나서 보다 탄탄한 시민운동을 펼칠 수 있는 냉정하고도 합리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그것이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득이 될 수 있다.
최근 시민단체와 젊은 정치가들이 벌린 일련의 불미스런 사건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제 누구를 믿어야 되는가”라고 개탄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애초부터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믿어 버려서 법과 논리에 벗어나더라도 눈을 질끈 감고 무조건 박수를 쳐 준 쪽에 더 큰 잘못이 있다고 본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GNP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주관에 따라 얼마나 성숙한 판단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세상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양분하는 것은 사춘기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누구든 유혹 앞에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명성만큼 가중되는 응분의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가 주위의 시선 때문에 차마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지 못했다면 새로운 세대는 체면을 벗어버린 만큼 내적인 도덕성을 스스로 키워야 한다.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는 나라일수록 전통에 대한 거부 역시 매우 과격해지게 되는데 특히 우리나라처럼 오랜 가부장제나 구태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부패한 기성세대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을수록 새로운 세력의 등장은 필연적인 추세다. 하지만 전통적 기반을 무시하는 진보나, 미래에 대한 혜안이 없는 경직된 보수는 양쪽 다 자기 도취에 빠져 고인 물처럼 썩게 마련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나미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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