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정치지도자의 말 바꾸기 사례는 많았으나, 사회가 대체로 용인하는 분위기 였다. 정치지도자가 식언을 한다 해도 그것을 책하기에 앞서 정치적으로 궁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말을 했다거나, 아니면 그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도 커 모른척 적당히 눈감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정치지도자가 국민을 상대로 식언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웬만한 나라에서는 말 바꾸기를 하는 정치지도자는 온존하지 못한다. 정직하지 못하거나 소신과 철학이 빈곤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정치적 기반을 상실하고 만다. 우리 사회도 점차 그런 경향을 띠어가고 있다. 최근 JP와 이한동총리서리의 선거 때 어록이 새삼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세월이 변했음을 실감케 한다.
■말 바꾸기에도 유형은 있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고의적으로 말을 바꾸는 경우, 상황 변화를 내세워 말을 바꾸는 경우, 무지의 소치로 말을 바꾸는 경우 등 다양하다. 박정희전대통령이 민정이양 약속을 어긴 것이나, 노태우전대통령이 중간평가 약속을 어긴 것, YS가 3당 합당후 내각제 합의각서를 파기하고, DJ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복귀한 것 등이 그런 유형의 하나들이다. DJP의 내각제 개헌약속, 이인제씨의 경선불복 등도 물론 포함된다.
■엊그제 JP는 ‘실사구시(實事求是)’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말로 민주당과의 공조를 기정사실화 했다. JP는 이 말을 하면서 겸연쩍은지 야릇한 말을 하나 덧붙였다. “국정책임은 우리 정치인에게 있지, 논설이나 시민연대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그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논설이나 시민연대에 국정책임이 없다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정치인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왜 하필이면 ‘논설’을 지목했을까. 그가 암시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역시 그에게는 은유의 말솜씨가 있다. 그는 운치가 있는 정치인이다. 아코디온도 잘 켜고, 그림은 전업화가 수준이다. 그런 그가 말 바꾸기의 명수처럼 비쳐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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