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성실하게 방탕한 삶을 살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성실하게 방탕한 삶을 살라"

입력
2000.05.29 00:00
0 0

"나를 ‘펑크’라 불러다오. 나는 멸종된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다.”현대 미국문학의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찰스 부코우스키(1920-1994·사진)의 단편집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바다출판사 발행)가 번역됐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마니아 집단을 가진 그이지만 정작 한국에는 사실상 첫 소개되는 그의 소설은 강렬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단편들이 음습하고 몽롱하면서도, 생의 어두운 이면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묘사와 대화로 읽는 이들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독자 여러분이 허락해준다면 앞으로도 나는 창녀들, 경마 술과 함께 세월을 보내련다. 그래서 맞이하게 되는 죽음은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단어들로 치장된 그 어떤 죽음보다도… 내가 볼 때는 성실한 것이다” ‘정치만큼 지저분한 것은 없다’는 단편에서 부코우스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이 말처럼 평생을 술과 섹스에 집착하며 하급 노동자로 전전하면서 살았다. 독일 출생으로 세 살 때 미국으로 이주 LA시립대를 중퇴하고 스물네 살 때 소설을 처음 발표, 이후 일정한 직업 없이 거의 평생을 미국 전역을 떠돌면서 살았다. 죽기 직전 발표한 ‘펄프’라는 작품까지 50권 이상의 시집과 소설집을 냈다. 부코우스키의 이런 생애는 역시 그와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 미키 루크 주연으로 1987년 ‘술고래(Barfly)’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얼핏 작품을 보면 1960년대 미국문화를 휩쓸었던 비트 세대의 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그렇게 규정되기를 거부하고 자신을 ‘펑크’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의 세계는 주류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이 주조이다. 베트남전의 참상, 암울한 하층노동자들의 생활에서 나아가 종교에 대한 무시, 노동의 부정, 정치에 대한 경멸이 소설세계 전반을 꿰뚫고 있다. “미국에서 산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패배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는 몸서리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그 길밖에 없다. 무의미한 것들을 위해, 열심히 싸움의 전술을 몸에 익히고 있어야 한다”(‘정육공장의 키드 스타더스트’에서). 작품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그는 스스로 아웃사이더로 남았다. 이때문인지 미국 주류문단에서는 이단아 취급을 받았지만 프랑스 시인 장 주네는 그를 ‘20세기 최고의 시인’이라고 칭했고, 유럽과 일본에서는 10만 단위 이상으로 책이 팔릴 정도로 열광적인 마니아집단을 가진 작가이다. 인터넷에도 그와 관련된 사이트들이 상당하다. 국내에는 1990년대 중반 그의 자전적 장편소설인 ‘시인의 여자들’이 번역됐지만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

하종오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