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관련 긴급 경제장관회의가 열린 27일 오후. 김경림(金璟林)외환은행장은 3시간이 넘는 마라톤회의를 끝낸 뒤 지친 기색으로 기자들에게 “빨리 월요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정도의 압박이면 현대가 월요일 금융시장이 반응을 보일만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강한 기대를 담은 발언이었다.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국내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시장이 등을 돌리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단언한다. 유동성 문제는 결국 ‘시장 현상’이라는 뜻이다.그러나 현대는 정부나 채권단에만 ‘승인’을 받으면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정부와 채권단을 수긍시킬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만 빠져있는 모양이다.
시장은 현대의 생각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무리 “유동성 문제는 없다”고 공언해도 투자자들은 현대의 재무구조에 대해 이미 낱낱이 꿰뚫고 있다. 당장 몇천억원이 지원된다 하더라도 자산매각, 지배구조개선 등 실효성있는 대책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격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한보,기아,대우 등이 시장을 외면한 채 정부나 채권단만 설득시키려다 좌초했던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정태수(鄭泰洙) 전 한보회장이 청문회와 법정에서까지 “채권단이 3,000억원만 더 빌려줬으면 부도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수차례 되뇌였던 모습을 현대 경영진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이제는 ‘시장과의 대화’에 나설 때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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