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영화축제 칸영화제가 끝났다. 이번 영화제에는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경쟁부문에 올랐고 비경쟁부문에선 ‘오!수정’(홍상수 감독)이 ‘주목할 만한 시선’에 ‘박하사탕’(이창동 감독)이 감독주간에, ‘해피엔드’(정지우 감독)가 비평가주간에 출품됐다.임권택 '춘향뎐' 감독 홍상수 '오! 수정' 감독
비록 상은 받지 못했지만 한국영화는 700만달러에 이르는 수출계약을 맺었고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가 홍상수감독주간을 만들고 ‘박하사탕’을 개막작으로 상연키로 하는 등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행사중 르몽드지로부터 각각 ‘한국의 대표감독’ ‘차세대 한국의 대표감독’으로 평가받았던 두 사람이 만났다.
●임권택(林權澤)
1936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광주 숭일고 3학년을 중퇴했다. 1961년 영화 ‘두만강아 잘있거라’로 데뷔, ‘만다라’‘길소뜸’‘서편제’등 96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영화화해 세계에 한국영화의 존재를 알린 감독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1993년 칸영화제에서 ‘임권택 주간’이 열렸으며 그해 ‘서편제’로 상하이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홍상수(洪尙秀)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미 시카고예술대를 나오고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
이 영화로 벤쿠버국제영화제 용호상과 로테르담영화제 타이거상을 받았고 두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은 1998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올랐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시나리오 담당교수이다.
_칸영화제에 가보시니 어땠습니까.
▲ 임권택 = 가보니 거기가 바로 세계 영화시장의 창구예요. ‘춘향뎐’도 이번에 가서 몬트리올 오사카 요코하마 브뤼셀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어요. 또 프랑스 카날플뤼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제외한 전세계 배급을 맡기로 했어요. 상도 상이지만 팔려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칸에 가보길 정말 잘했어요.
그리고 영화제 사람들이 자기들이 배출한 스타나 감독들을 관리하는데 철저한 것 같아요. 홍감독이나 이창동 이광모감독같은 사람들이 관리대상 감독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춘향뎐’이 본선에 들고 호평도 받고 인터뷰때도 반응이 좋아 붕떠서 ‘뭐하나 받겠지’했는데 빈손으로 돌아와서 영..(웃음). 그래도 다음 작품에 돈을 대겠다는 사람도 있답니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 홍상수 = 제가 관리대상 감독인가요? 처음 들었습니다.(웃음) 한국영화에 대한 반응이 대체로 좋았습니다. 제가 확신하는 것은 이 사람들은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라별로 안배도 하고 어느 나라의 정치상황이나 영화수준을 감안하고 그 나라를 부추겨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면서 상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더 중요한 것은 국내에서 많은 감독들이 다양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 임권택 = 그럼요. 그 사람들이 홍감독을 차기 한국대표주자라고 하는데 어느날 불쑥 하는 말이 아니에요. 꾸준히 영화를 보면서 평가하는 것이거든요.
_두분 영화는 서로 보셨나요? 현지 반응은 어땠습니까.
▲ 임권택 = 저는 남의 영화를 잘 안봐요. 나이가 들다보니 지향하는 바가 다른 영화는 안보게 되고 잘 만든 영화는 부지불식간에 베끼게 될 것 같아 못보겠고.
홍감독이 잘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 편도 못봤어요. ‘오! 수정’은 칸에 가서 봐야지 했는데 얼마나 바쁘던지 다른 사람 영화는 한편도 못봤어요. 인터뷰만 40회를 했으니까.
▲ 홍상수= 그곳에서는 저도 한편도 못봤습니다. ‘춘향뎐’은 국내에서 봤는데, 임감독님께서 오래 묵혀 왔던 이야기라 판소리와 영상의 만남을 생동감있게 잘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문득문득 옛날 우리모습을 멍하게 생각하며 영화를 보게 되더라구요. 임감독님의 영화 중에 제일 좋았습니다.
▲ 임권택= ‘춘향뎐’을 갖고 칸 경쟁부문에 올라서 다행이에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전이고 우리 것이 많이 들어있는데 우리끼리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고 세계 사람들한테 보였으니 참 좋지요.
영화제 본선 시사회때는 국내 상영판중 대학생들이 판소리를 들으러 가는 장면을 잘라내고 곧바로 박동진씨가 판소리를 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판소리가 우리 귀에도 어려운 데 과연 외국인이 이해할까 걱정도 들었어요. 그런데 ‘음악이 좋았다’는 평을 듣고 놀랐습니다.
국내에서도 외교사절 시사회때 베를린영화아카데미원장이 보고서는 독일에 가서 전화를 했어요. “음악이 지금도 귓전에 울린다”고요.
▲ 홍상수= 영어자막이 (‘오!수정’의) 뉘앙스를 잘 살리지 못한 것같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인터뷰때 제 영화의 구조와 형식 시선 등에 대해 많이 질문하는 것을 보고 공감하는 부분이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여자에 대해 섬세하게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어요. 시사회때 시작만 보고 밖에 나와서 담배 피우고 있었는데 관객들이 웃는 장면이 한국하고 똑같았어요. ‘저 땅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같은 실존적 고민들을 하고 사는구나’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_ 영화계에서는 ‘서편제’로 갔으면 수상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던데요?
▲ 임권택= 10년전 낭트영화제에서 저의 회고전이 열렸는데 거기 칸영화제쪽 사람이 왔어요. 그 사람이 그러대요.
“기다려줄테니 다음 작품은 칸에 내라.” 그런데 그 때는 ‘장군의 아들’을 찍을 때니 내놓을 수가 있어야지요.(웃음) 나만 믿고 모든 제작비를 대준 영화사에 돈 좀 벌어주려고. 나도 빚도 갚고 그랬지요. ‘장군의 아들’ 2편, 3편을 계속 찍었으니 몇년간 연락을 못했어요.(웃음)
1994년 ‘서편제’가 퐁피두문화센터에서 열린 한국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됐을 때 칸에서 막스 테시에가 왔어요. “이 영화, 여기 와서 처음 본다.
이런 영화가 왜 칸에 초대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축제’(96년)를 만들었을 때는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출품하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경쟁부문이 아니라 거절했습니다. 뭘 몰랐던 거지요.
칸은 관리하는 감독을 이런 저런 부문에 올렸다가 상을 주는 건데. 칸에서 상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아주 커요.
국제영화제를 3개나 갖고 있고 영화산업이 있는 나라인데 칸에서 상을 받아 보지 못한 나라는 우리나라 뿐일겁니다.
그래서 이번에 꼴등에라도 걸리면 ‘나는 자유다’라고 외치려고 했습니다.(웃음) 세계시장에 나가보면 우리 영화수준은 대단히 높거든요. 몇년새 툭 튀어올랐어요. 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온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렇게 됐나.
▲ 홍상수=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수상보다는 국내사람들과의 소통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감독 같은 사람들은 외부에서 알아주든 말든 자기 길을 가다보니 결국은 거장이 됐잖아요.
▲ 임권택= 그렇지요. 나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해왔다는 것으로 만족해요.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 영화의 실험성을 평론가나 영화기자들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칸에서도 기자회견때 그걸 많이 묻더군요.
처음부터 판소리와 맞추려고 했느냐, 아니면 하다보니 그렇게 됐느냐고요.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40, 50대 관객이 없는 게 문제에요.
칸에는 영화를 보려고 줄은 선 관객이 대부분 40, 50대여서 굉장히 놀랐어요. 나이든 관객들이 영화를 사랑해주니까 우리같은 감독도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거든요.
▲ 홍상수= 저의 고민은 어떡하면 제가 체험한 것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굵은 언어’로 묶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흥행이 덜 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만든 언어에 반응하는 관객이 적다는 뜻이니까요.
-작가주의 감독들도 관객반응에 신경을 쓰나요.
▲ 홍상수=남의 돈 가지고 영화 만드는 데 당연히 신경을 쓰죠. ‘이 영화는 흥행을 위해 만들겠다’ 할 수는 없지만요. 영화를 만들 때는 자신 안에 든 것을 총체적으로 끄집어낼 생각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제가 상을 주면 제작자에 좀 덜 미안하지요.
▲ 임권택= 그런데 흥행은 한번 돼봐야 해요. 그래야 자신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 자기 영화에 대해 책임감도 커지고요. 흥행이 한번도 안되면 감독이 주눅들어서 안되요. 홍감독도 이번에 한번 흥행을 겪어봐요.
-한국영화가 해외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신경써야 할 부분은 어떤 건가요.
▲ 홍상수= 영화수준은 이제 부족한 점이 없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랬지요. 억압적인 정권이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또 그런데 신경쓸 만큼 나라살림도 좋지 않았죠.
그러고 보면 한국영화가 빠른 시간 안에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임권택= 가장 취약하다고 여겼던 현상 화질 소리도 참 좋아졌어요. ‘춘향뎐’도 일본에서 작업할까 하다 국내에서 했는데 칸 현지에서도 칭찬을 들었어요.
영화진흥공사가 홍감독처럼, 뛰어난 감독들이 마음껏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 홍상수= 학교에서 젊은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게 됐어요. 너무 좋은 재목들이 많아요. 새로 구성된 영화진흥위원회도 정력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 임권택= 홍감독은 지금 해오던대로 계속 영화를 만들어 가라고. ‘장군의 아들’만 안만들면 돼.(웃음)
▲ 홍상수= 오래오래 영화로 만나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서화숙 여론독자부장
hssuh@hk.co.kr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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