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 반응.제언한국교육 개혁을 위한 한국일보사의 대형 기획물 ‘긴급제안-한국교육바꾸자’에 대한 독자들의 반향은 컸다.
한국일보로는 일선 학교 교장과 교사, 학부모들의 전화와 E-메일이 빗발쳤다.
“이 시리즈를 계기로 우리 교육의 근본을 바꿀 수 있는 의견 결집이 이뤄져야 한다”는 격려에서부터 “시리즈의 내용이 아직은 현실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도 다양했다.
특히 현장의 교사와 학부모들은 현장의 실태를 생생한 목소리로 전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해온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털어놓았다.
장문의 글을 보내온 교사도 있었고 2시간이 넘는 통화를 통해 교육의 문제를 짚은 학부모도 있었다. 이들 모두 “한국교육이 지금은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야 할 때”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교사: 현장교육자 재량권 확대가 개혁의 시작
서울 사립 D고 이모 교장은 “한국교육 바꾸자는 시리즈 내용에 공감하지만 먼저 학교교육의 실상과 관련해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며 학교 현장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5월15일 스승의 날 행사에 교육부장관 명의로 ‘기념식을 반드시 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는 얘기를 시작으로 이교장은 교육당국이 학생회장 선거와 학생들 등하교 시간에 대해서까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교장은 현재 단위학교에는 아무런 재량권도 없으며 교장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현장의 교육책임자에게 교육당국이 재량권을 넘겨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개혁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교장은 또 “진공관시대에 만들어진 유령같은 제도가 아직도 디지털시대를 지배하고 있다”며 평준화정책을 비판했다.
이교장은 “시험을 치면 10분도 되지 않아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이 있고 2분의1 더하기 3분의1이 5분의 1이라고 쓰는 학생과 미적분을 푸는 학생이 공존하는 게 지금 교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의 원리가 사라진 현재 고교교육은 곪아서 썩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광진중 성낙영(成洛榮) 교사는 ‘교사 평가문제’를 거론했다.
“교육에 뜻을 두고 의욕에 넘쳐 학교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교사들도 몇 년 가지 못해 그 의지가 꺾이는 게 지금 교육현장의 현실”이라고 지적한 성교사는 지금의 교사평가제도가 교사에게 획일화와 체제 안주를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교사는 교장이나 교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교사평가방식을 교사 상호평가와 학생에 의한 평가방식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득권자의 눈치를 보고 아부를 잘하는 교사가 살아남는 풍토가 사라지고 교사 개개인의 호연지기와 창의성이 발휘되어야 학교가 산다”는 게 성교사의 주장이었다.
전 김해교육장을 지낸 이진규(李鎭揆·65) 김해청소년상담실 원장도 교사의 자질에 대해 의견을 보내왔다.
이원장은 “사명감을 가진 교사들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교원양성제도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범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교직과목만 적당히 이수하고 시험에 합격하면 누구나 교사가 될 수 있는 현재의 중등교원 임용제도는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사범대 지원 학생에게는 특별한 적성검사와 인성검사를 실시해야 하고 ‘지식 중심’의 교원이 아니라 ‘인성 중심’의 교원 양성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 언북중 김창학(金昌鶴) 교사는 장학사 연구사 등 전문직 선발방식을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 교수, 학습, 인성지도를 충실히 하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교사가 전문직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학 문제집을 뒤적이기보다 학생들에 대한 교수 학습 분야에 더 힘을 쏟는 교사가 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전문직 선발방식에서 객관식 시험 대신 논술문제를 확대하고 추천서, 현장확인 평가, 교수·학습지도능력 평가 등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러한 선발을 위해 교육청 내에 전문직 전형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충북 음성 초등 병설유치원 왕정희 교사는 “현재의 한국교육은 유아교육이라는 뿌리가 썩은 상황에서 물과 양분이 공급되는 양상”이라며 유아교육에 대한 의무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아기에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생활습관을 완전히 학습하고 초등·중등교육까지 학문적인 지식을 습득하여 바람직한 인간으로 자라도록 해야 한다는 게 왕교사의 주장이었다.
■학부모: 학생에 의한 교사평가...
초등담임 6년연임제 도입을
재수생과 고2년생 두 명의 자녀를 둔 이경우(李京雨·46·여)씨는 교육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언론보도는 학부모들이 문제라고 체감하고 있는 부분은 외면하고 있다며 학부모들의 심정을 알려왔다.
이씨는 현재 교사들의 책임감과 성실성은 바닥수준이라며 경쟁이 사라진 교직사회는 학생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씨는 “그나마 사립고는 경쟁이 있어 실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가 있지만 공립학교에는 근무처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순환되기 때문인지 노력하는 교사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사립과 공립고 교사들 간에 질적 차이가 있음을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절감했다”고 말하며 “학생에 의한 평가제 도입 등 공립교의 교사경쟁력 향상을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공립학교에서는 수업시간중 90% 이상의 학생들이 잔다는 말은 결국 교육당국의 지침만 따라가고 건성건성 시간만 때우는 교사들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학생과 고3 수험생을 둔 현경자(玄慶子·47·여)씨는 “요즘은 학교교사 믿고 있다가는 대학 못간다는 얘기가 공공연한 게 현실”이라며 “교사와 학생이 물과 기름이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현씨도 “무엇보다 교사의 질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중3학생의 학부모라는 윤수애(尹壽愛·49)씨는 “지금 교육현실에서는 학부모가 교육에 대해 할 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느껴온 문제를 다 말하려면 끝도 없다”며 “우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초등교육이 교육개혁의 큰 논의에서는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윤씨는 우선 초등학교는 1학년 때 담임이 6학년 때까지 계속 맡는 ‘담임 6년 연임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담임 6년 연임제가 도입되면 학생-교사-학부모간에 6년간 유기적 결합이 지속돼 교육의 뿌리인 초등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씨는 담임 6년 연임제는 한때 상당히 구체적으로 거론됐지만 일부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안다며 혹시 뜨내기 정신만 가지고 촌지만 받아챙기려는 사람들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씨는 연임제를 할 경우 불성실한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강한 문제 제기로 오히려 쉽게 도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 기초과학 교육 언급없어 아쉬움
교수들로부터도 많은 반응이 있었다.
공주대 사범대학 물리교육과 육근철 교수는 사범대나 교육대에서 직접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 중에서 창의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면서 교육을 바꾸려면 하드웨어적 접근에서 소프트웨어적 접근으로 근본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육교수는 이에 대한 이유로 오늘날 교육의 문제는 제도가 잘못된 탓이 없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교육을 하고 있는 전문가 행정가 교사 학생 학부모 집단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육교수는 이어 제도를 바꾸기는 쉽지만 인적 구성원들의 근본 철학이 바뀌지 않는 한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육교수는 또 21세기의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창의적 인간일 것’이므로 제도를 바꾸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인간을 육성’할 것이냐에 초점을 두어 우리의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자신의 머리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인간을 육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급학교 입시를 위한 준비생을 육성하는 지금의 교육을 바꾸기 위해서는 교수·학습 방법을 바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교수·학습 방법에 일대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육교수 외에 한동대 조광제 교수도 ‘긴급제안’에 교육학자나 교육행정가의 의견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으며, 방송정보대 강승구 교수는 ‘긴급제안’에서 대학에서의 기초과학교육의 중요성이 언급되지 않은 데 대해 아쉬움을 보내왔다.
■전문가: 초등교과서 석학들이 실명제로 쓰게해야 質향상
시스템전문가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는 지만원(池萬元) 박사는 과외문제, 교육문제도 시스템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목표가 잘못되면 시스템 전체가 잘못되는 것이므로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목표를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로 전환시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초등학교 교과서일수록 최고의 석학이 실명제로 정성껏 쓰도록 하는 교과서 개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과서와 참고서들이 훌륭하면 학생들은 교과서로만 충분히 예습할 수 있고 독학도 할 수 있으며 이런 과정에서 창의력이 스스로 계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같은 내용을 여러 저자의 시각으로 소화한다는 것은 사고방식을 다양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지박사는 또 교육시스템을 CD나 비디오에 의한 것으로 전환, 같은 과목이라도 설명하는 강사에 따라 교습 방법이 다채로워지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강사를 선택할 수 있고, 또 다른 학생들은 같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 여러 강사들의 설명을 다같이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박사는 이와 함께 학생들이 스스로 인격을 도야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방법이 새롭게 도입돼야 한다며 과학자 예술가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을 학교에 초청, 어린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갖게 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또 도서관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어린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숙제를 내주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동훈사회부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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