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시대에 절대적인 진실을 가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중론(衆論)이 있고 외부에 투영된 모습이 존재할 뿐이다.재무상태가 건전한 어느 기업이 부도위기에 몰렸다는 소문이 나돌 때 기업은 극구 소문을 부인한다. 시중의 소문과 해당 기업의 주장은 상당기간 힘겨루기를 하지만 대개는 소문의 승리로 결판난다. 기업이 주장하는 객관적인 사실은 힘을 잃고 시중에 떠도는 소문이 어디로 모아지는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소문이 ‘괜찮다더라’로 모아지면 그 기업은 살아남고 ‘위험하다더라’고 모아지면 망하거나 적어도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진실의 자리는 소문 또는 외부에 투영된 모습의 차지다.
지금 우리 경제를 놓고 정부와 민간 경제연구기관, 외국의 시각에 큰 차이가 있다. 곳곳에서 제2의 경제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해 경제관료들은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경제관료들은 각종 거시경제지표 등을 인용하며 우리 경제는 순항을 계속하고 있으며 다소 불안요인이 없지 않으나 펀더멘털이 튼튼하기 때문에 결코 제2의 외환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 경제연구소나 외국 경제기관의 시각은 다르다. 이들은 한국경제가 아직 위기는 아니지만 현 상태대로 방치하면 제2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소리만 요란했지 제대로 되지 않아 금융시장의 불안이 심화되고 있으며 경상수지도 위험수준으로 치닫고 있고 정부의 개혁의지도 이완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특히 지지부진한 대우 처리나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정부의 개혁의지에 의문을 갖게 한다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경제상황이 IMF관리로 들어간 97년과 흡사하다고까지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참 모습은 무엇인가. 불행히도 국민으로선 검증할 방법이 없다. 경제전문가들이 수치를 제시하며 ‘우리 경제가 이렇다’고 하면 국민들은‘그런가 보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나 민간, 외국의 시각이 다르니 국민은 혼란스럽다.
외부에 투영된 모습이 진실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 경제의 해법은 민간 경제전문가나 외국의 경제분석기관들이 보는 시각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아무리 ‘펀더멘털이 탄탄하다’‘결코 제2의 경제위기는 없다’고 외쳐도 외부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정부의 주장은 구차한 변명이 되어버리고 우리 경제의 신인도만 더욱 떨어뜨릴 뿐이다.
벌써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한 신용평가기관은 일부 은행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낮추고 한 다국적 증권회사는 한국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경제분석 전문지는 지난 5년간 기업환경 순위 24위를 차지했던 한국이 올해부터 26위로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인의 투자도 위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부정적인 인식은 삽시간에 번질 기세다. 무서운 파괴력도 지니고 있다. 심상치 않은 불길한 조짐이다.
부랴부랴 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 서울사무소장의 기자회견을 주선하고 경제관료들이 공개석상에서 ‘한국경제 안정론’을 강조하는 등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씻는 데는 역부족이다.
지금 정부는 풍문과 싸울 때가 아니다. 말이 아닌 과감한 행동으로 우리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요인들을 제거해나가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외부의 경고와 주의가 과장되었다고 해서 손해될 것은 없다. 탈없이 넘어가면 다행이고 탈이 생겨도 대응을 미리 했으니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위기란 모르고 맞았을 때 위기이지 알고 맞으면 위기가 아니다.
방민준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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