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이한동 자민련총재를 국무총리로 지명함으로써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가 복원됐다. 이를 놓고 일부에선 정국안정과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지지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총선에서 표출된 민의를 왜곡한 정략적 야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찬성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한동 총리 서리의 취임으로 총선기간중 부분적으로 중단된 민주·자민 공조관계가 복원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로써 정권교체를 가능케하고 IMF 관리체제 극복에 기여한 DJP공조의 완전회복도 시간문제가 됐다. 헌정사상 최초의 공동정부는 이제 막 유종의 미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공조 파기를 선언한 자민련 총선 전략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반면 총선후 공조회복은 ‘정치적 이성’을 무시한 전략이 그 한계성으로 인해 도달한 필연적 귀결점일 것이다.
공조복원이 정부여당의 정국운영에 결정적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은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의의는 이런 정략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양당공조 회복은 무엇보다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 및 평화정착을 향한 정부의 민족적 대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합리적 협상과 타협으로 처음 탄생한 서구식 연립정부를 구체화한 점에서 대단히 뜻깊은 일이다.
만약 공동정부가 파탄으로 끝났다면 한국 정계에서 정치적 신의란 다시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과거 군사정부 시절 김대중과 호남인을 ‘왕따’시킬 때 동원됐던 온갖 귓속말이 다시 난무했을 것이다.
막말을 다해 놓고 이제 와서 무슨 낯으로 공조를 재개하느냐고 국민이 비난한다면, 응분의 사죄는 자민련의 몫일 것이다. ‘막말’ 전술은 주효했는지 모르겠으나 ‘생물’같은 정치판에서 보면 자민련의 자산을 손상시키는 현명치 못한 전술이었다. 그렇다고 선거용 발언을 들어 공조복원을 탄핵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 것이다. 선거 결과의 불가측성 때문에 서구에서도 이런 일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적인 자민련이 ‘쪼그라든’지금 아예 자민련과 결별해야 한다는 급진 개혁파들의 권고도 위에서 열거한 이유 외에 심층의 정치적 이유에서도 현명한 것이 못된다. 두 보수야당이 이구동성으로 소수여당을 ‘왕따’시키는 사태를 상상해 보면 알 것이다.
■반대
김인영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한동 자민련 총재가 국무총리로 지명됐다. 이에따라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체제도 복원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저질 코미디 한편을 본 기분이다. 21세기 한국정치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게 이런 것 뿐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총리 지명과 공조 복원은 우리 정치가 지양할 몇가지 추악한 면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나는 반대한다.
우선 정치신뢰의 문제다. 신뢰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사회적 자본이자 새로운 덕목으로, 지식기반 사회의 본격 도래와 더불어 선진사회의 조건이 되고 있다. IMF 위기도 우리 경제에 대한 대외신뢰 부족이 한 원인이었고 그 신뢰 회복을 위해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조차 정부가 시장에 신뢰를 주지못해 주가가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총리 지명과 공조복원은 국민을 정치 불신을 넘어 정치혐오, 정치냉소를 낳고 있다. 신뢰를 형성, 위기를 극복해야할 정부가 불신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과의 공조는 없다”고 목이 쉬어라 외치다 ‘공조관계의 복원’을 선언하고 총리로 지명된 지도자를 국민이, 관료가 믿고 따르리라고 여권은 생각하는가. 국민을 속여왔던 총리를 따르라는 말인가.
정책에 의한 연합이 아니라 정략에 의한 야합이라는 점도 지적할 부분이다. 정치개혁을 기치로 내세우는 민주당은 5공 시절부터 변신을 거듭한 보수적 인물을 총리에 지명해 어떤 개혁을 이루려는가. 이번 정권에서도 개혁은 1년으로 끝나는 것인가.
공조복원이 정치안정과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 또한 잘못된 것이다. 야당의 극렬한 반대를 불러와 정국을 불안하게 하는 게 정치안정이 아니라 국민이 투표를 통해 만들어준 양당제에 충실한 것이 정치안정이다. 원활한 국정운영 역시 야당을 정책과 논리로 설득, 지지를 얻어낼 때 가능한 것이지 인위적인 정계개편에 기초한 공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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