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텍사스촌’윤락업주와 단속 경찰, 구청 공무원간의 검은 공생관계를 유지시켜준 것은 윤락녀들이 받은 화대(花代)였다.윤락업주 남모(45)씨는 그날 번 화대를 거의 매일 경찰관에게 전달한 뒤 이를 꼼꼼하게 50여쪽 분량의 개인용 수첩에 기록했다. 남씨 수첩에는 97년부터 돈을 준 경찰관과 소속부서, 금액, 용도가 일자별로 조목조목 정리돼 있다.
남씨는 텍사스촌을 관할하는 종암경찰서, 파출소, 성북구청 등 지도·감독·단속 권한을 가진 곳에는 어김없이 뇌물을 건넸다.
종암서의 경우 미성년자 관련 범죄를 담당, 윤락업주들이 가장 기피하는 소년계를 비롯, 형사계 방범지도계까지 망라됐고 심지어 선거·경제사범 수사를 담당, 업주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수사2계까지 남씨의 돈이 뿌려졌다. 텍사스촌 관련 파출소는 근무조에 따라 나뉘어진‘갑·을조’별로 돈을 건넸고 파출소장에게는 별도의 돈을 쥐어줬다.
경찰관들에게 전달된 금액은 최고 2,000만원에서 최저 10만원까지. 떡값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지속적이고도 정기적으로 돈을 받았다는 점.
특히 남씨는 매월 17-19일 파출소에 근무조별로 20만-50만원을 건네는 등 상납일까지 정해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관 중에서 남씨가 중점 관리했던 당시 종암서 형사계 소속 안모(42·서울경찰청 근무)경사에게는 부인을 통해 거의 매월 100만원의 뭉칫돈이 통장을 통해 건네졌다. 남씨의 다른 수첩에는 지난해 12월말 2,000만원이 안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기재돼 있다.
남씨는 한번‘거래’한 경찰관은 끝까지 챙기는‘의리’를 보였다. 안경사가 올 3월 경사로 승진, 서울경찰청으로 전근을 갔지만 남씨는 이후에도 안경사에게 월100만원씩의 ‘성의’를 보였다. 안경사 외에 서울경찰청에 근무하는 이모씨도 남씨의 집요한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돈을 상납받았다.
종암서에 근무했던 한 경찰관은 “업주가 일단 자신을 지목해 금품을 전하려하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며 “거의 모든 부서의 동료들에게 금품이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자신만 깨끗한 척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남씨가 건넨 돈의 명목도 각양각색이었다. 1년에 수차례 제공되는 1인당 10만원의 휴가비가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계장 이상 간부들이나 요직에 있는 공무원에게는 회식비와 명절 떡값까지 지급했다.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한 것과 이후 2차 술값도 남씨가 지불한 것으로 수첩에 기록돼 있다.
특히 남씨와 함께 검찰에 적발된 업주 A씨는 “업주들이 개인적으로 금품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친한 업주끼리 계(契)를 부어 매달 수천만원씩의 상납 비용을 조달했으며, 이 돈이 연간 수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상납관행에 대한 충격적인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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