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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 바꾸자](4)인문학자 유평근교수의'학생중심 교육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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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 바꾸자](4)인문학자 유평근교수의'학생중심 교육론'

입력
2000.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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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 바꾸자] 인문학자 유평근교수 '학생중심 교육론'"캠퍼스서 '경제독재'를 몰아내자"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돈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돈만 있으면 인간만사가 형통한 것인지…. 독재정치가 무섭다는 것은 이미 체험한 바지만 ‘경제독재’도 횡포가 심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교육사에서 실용성만을 강조하는 정부시책의 문제점이 거론된 적은 기실 어제 오늘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대 군사정권 이래로 개혁은 줄곧 기능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국가경제가 IMF를 당하자 교육개혁은 급기야 ‘교육시장화’로 치달아 그 절정을 이룬다. 정부가 내세우는 ‘지식자산론’과 ‘소비자 중심교육’정책도 따지고 보면 그 개혁의 일환이다.

그 정책에 충실하자면 지식도 즉각적인 환금성을 목표로 해야 하고, 학교는 진작부터 학생들에게 “지식을 돈보듯”하라고 가르쳐야 하며, 선생은 자신의 지적상품을 팔기 위해 온갖 낯뜨거운 유객행위를 서슴지 말아야 한다.

그 야한 정도가 노골적인 성인영화보다 더한지 덜한지 따져 보고픈 심정이다. 게다가 이 정책이 몰고온 교육현장의 현실은 과연 어떠한가.

교육당국은 이를 변혁기의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강변하겠지만, 과도한 평준화교육의 규제에 묶여 가뜩이나 어려워진 수업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들은 수혜자가 아니라 소비자임을 자처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에 의하여 무참하게 성토당하는가 하면 ‘신지식인론’을 등에 업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엉뚱하게도 증권투자가 이 시대의 으뜸가는 교양교육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실상 ‘물신주의’나 ‘배금사상’은 인간의 본능적인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렇기에 힘들여 교육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스스로 타고 나기 마련이다. 그 탐욕을 자제하라는 뜻에서 학교에서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가르쳐 왔다.

‘국부론’의 저자인 아담 스미스조차 “영리를 추구하다 보면 지성은 갈수록 위축되고 정신의 함양은 불가능하며 교육은 무시당하게 된다”면서 시장과 교육의 사회적 역할이 하나가 아님을 지적한 바 있다.

또 “자본주의사회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영리주의나 다다익선의 물욕에 물들지 않은 사회의 여타 분야들 덕분이다. 만일 고급관리와 군인, 법관, 종교인, 예술가, 학자들이 물욕에 빠지면 사회는 붕괴하기 마련이며 여하한 형태의 경제라 하더라도 위태롭게 된다”면서 프랑스의 자유주의 경제론자인 프랑수아 페루도 그 견해에 동조한다.

모두가 경제독재를 위험스럽게 생각하는 경계의 발언들이며 또 다름아닌 경제학자 자신들의 입을 통한 경고이고 보면 분명 우리의 교육정책방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이제는 인간사회에서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반성해 볼 때가 되었다. 교육정책당국은 소비자 중심 교육론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을 오도하기에 앞서 그 반성의 길에 동참해야 한다.

렇다면 과연 학생 중심 교육이란 무엇인가. 학생을 교육의 소비주체로 간주하고 학교에 소비자 중심주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학생 중심 교육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여기서 최근의 신경 생리학자들이 밝힌 바 있는 사실, 즉 인간의 대뇌는 매우 더디게 성숙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유인원인 침팬지의 뇌가 성숙하는 데는 6개월이 걸리지만 인간의 대뇌가 완전히 성숙하는 데는 최소 25년 혹은 그보다 훨씬 긴 세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 말은 뇌의 발달로만 보더라도 인간은 아주 오랫동안 미성숙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교육이란 미성숙 단계에 있는 어린 학생들이 다음 성숙 단계로 진입하는 학습과정을 돌보는 일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교육현장에서 바람직한 자신의 미래상을 어떻게 제대로 세울 수 있는지, 바람직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물어오는 학생들과 종종 마주친다.

그러나 상대가 저마다 무한한 가능성만으로 존재하는 학생들인 까닭에 보살피기가 참으로 조심스럽다. 우리는 이 조심스러운 보살핌을 진정한 의미의 학생 중심 교육이라 말하고 싶다.

언젠가는 활활 타오를 연소성에 어떻게 하면 불을 지필 수 있을까. 때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무지스러움을 어떻게 달래서 약을 먹게 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양자 간의 서로 다른 고민들이 진지하게 같이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학생중심 교육의 의미다. 상호간의 존경과 사랑에 기초를 둔, 사제 모두가 동의하는 협약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며,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의 교육이 개혁되기를 원한다면 바로 그 기초를 다지도록 힘써야 한다.

미국의 카네기교육재단에 설치된 고등교육발전위원회가 2년 전에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소비자 중심교육, BK대학원을 중심으로 한 연구 중심 대학 육성에 온 힘을 다 쏟고 있는 우리의 대학 현실에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 눈에 띈다.

보고서는 미국의 대학교수들이 자신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연구에만 급급한 나머지 대학의 일차적 임무인 학부 과정 교육이 황폐화하고 있다는 고발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대학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크고 작은 대안을 두루 건의하고 있다. 그중에는 시러큐스대학이 교수들에게 한 학기 강의를 시작하고 끝낼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가능하면 집에서 다과회를 열어 주기를 권유하는 대목도 소개되었다.

간단한 예만을 들었지만, 보고서의 내용은 연구와 교육은 분리할 수 없으며 대학원과 학부의 학과가 함께 연계되어 있을 때 피드백효과에 의해 대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제지간의 교육협약을 힘들여 구축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선결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오늘날과 같이 정보기술이 폭발적으로 만연된 사회에서 정부가 시장원칙을 국가의 지상전략으로 내세우게 되면 그 지원은 최고의 부가가치가 기대되는 공학기술과 벤처산업 육성에 편중되기 마련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는 대학 자체의 벤처기업화를 도모할 수도 있다. 다름 아닌 BK21정책이 그 대표적인 예다. 결과는 자명하다.

산업형 공학을 주축으로 한 BK대학원 사업단이 대학의 중추역할을 담당할 것이고 이윽고 실용성·생산성이라는 공학논리가 대학 전체에 요구된다.

의학교수는 환자를 생각하기보다는 질병에 더 큰 관심을 가질 것이며 유전공학도는 인간의 존엄성은 뒤로 한 채 무분별한 생명복제 연구에 몰두한다.

그렇게 되면 학문 간의 불평등은 차치하더라도, 앞서 지적한 대로 연구를 앞세운 교육 자체의 실종을 낳아 대학 자체는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더욱 아이로니컬한 것은 인간의 두뇌는 그 기능이 참으로 오묘한 까닭에 그런 척박한 연구풍토 속에서는 공학기술 자체의 발전마저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뇌를 연구하는 전문학자들에 의해 검증된 것의 하나를 예로 들자면 “인간은 다수의 뇌기능 가운데 어느 하나를 유전적으로 우수하게 타고날 수는 있지만 그 능력이 최대의 창의력을 발휘하려면 나머지 기능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라고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분배와 집중의 조화로운 조합을 토대로 해 폭넓은 교양교육을 밀도있는 전공교육에 앞서 행한다’고 밝히고 있는 예일대 문리과대학의 교육취지도 그렇고 학부생들이 저학년에서는 ‘필수 교양과목(core curriculum)’을 이수하고 고학년에서는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학문을 전공하도록 하고 있는 하버드대학의 경우도 신기하리 만큼 그러한 과학적 발견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특히 하버드대학이 ‘코어 커리큘럼’ 에 부여하고 있는 중요성은 특기할 만하다. 60∼70년대에 걸쳐 미국에까지 불어온 문화혁명의 바람에 파괴된 교육을 정상화하고 그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 하버드대학이 총력을 기울여 성안한 것이 바로 ‘코어 커리큘럼’이었다.

어떻게 보면 80년대 초부터 비롯된 미국의 고등교육 개혁은 교양교육의 재확립과 내실화에 모아졌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교양교육 프로그램은 대체로 학생들로 하여금 예술과목을 포함해서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를 골고루 폭넓게 섭렵하도록 짜여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분야를 횡적으로 연결하는 ‘다학제성(cross-disciplinary)’ 인지능력 계발을 겨냥하고 있다.

게다가 하버드대학의 루딘슈타인 총장은 그 대학에서는 학부에서부터 직업교육을 시작하는 학생은 그 수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 자기네 대학의 큰 자랑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선 문리과대학에서 인간과 자연에 관해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충분히 연마한 후에야 의과대학을 비롯한 법과대학, 경영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설계한 하버드종합대학의 사려깊고 균형잡힌 학제는 우리들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전문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순수학문이 절묘하게 접목되어 서로가 상생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교양교육은 정밀과학 이외에도 언제나 문학과 예술을 교과내용으로 담는 것이 상식이지만 (교양교육으로서) 문학과 예술이 학생들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도 많다.

대부분이 문학작품을 소녀 취향이 찾는 장신구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예술작품 속에서 마주치는 것은 우선 현실세계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세계의 모습이다.

그리고는 현실세계 이외에도 또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알고는 놀람과 동시에 그 놀라운 세계를, 소설 속의 인생을, 액자 속의 풍경을, 자연의 소음이 아닌 음악을 창조하는 주체가 바로 인간의 상상력임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예술작품을 음미할 때 느낄 수 있는 열렬한 감동이 우리 내면 속에 잠자고 있던 상상력을 흔들어 깨우기라도 하면 우리의 상상력은 어느새 날개를 펼친다. 상상력은 현실의 높은 담장도 쉽게 뛰어넘을 뿐 아니라 장애물경주 선수 같아서 그 어떤 경계도 쉽게 넘을 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의 용도는 문학이나 예술만의 것이 결코 아니다. 문학적 상상력이 ‘바다 밑 2만리’ 속의 ‘노틸러스호’를 창조하지만, 공학자의 창의력은 이제껏 본 일이 없는 핵잠수함을 발명해낸다.

차이를 고집하던 파장과 미립자가 서로 만나 양자역학 안에서 화목함을 자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상력이 그 경계를 허물도록 도와준 덕택이다. 상상력이 또 우리로 하여금 기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재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 앞으로 ‘있어야 마땅한 것’을 상상하도록 허락할 때는 비판정신과 윤리적 덕목을 창출하기도 한다.

상상력이 우리를 지금의 내가 아닌 더 큰 나로 성숙하도록 도와줄 때는 분명 교육적이 된다. 상상력은 또 다양한 전공 학문을 두루 섭렵하며 새로운 학문 패러다임을 고안하는 일에 빼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상상력은 결국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탈현실적이며 초현실적이다.

‘깃대가 흔들린다. 바람이 분다. 마음이 흔들린다’는 선사의 화두 속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세계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막힘없이 오고가는 상상력의 소유자를 우리는 균형잡힌 교양인이라고 부른다.

교양은 본래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회가 온통 권력과 금전만을 추구하는 난장판이 되면, 그래서 학생들이 달리 배울 것이 없으면 학교가 제아무리 인간교육을 외쳐대도 소용이 없다.

사회는 학교를 가르치려 하기에 앞서서 자신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교육을 바로 세우는 지름길이다. 사회가 정직하지 못하면 교육개혁안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공염불이 되고 만다.

● 유평근교수 약력

- 서울대 불문과졸 1965

-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1971~현재

- 프랑스 그로노블대 문학박사 1975

- 프랑스 그르노블대학 상상력연구소 객원교수 1986-87

- 교육부 인문사회과학 중점영역연구평가위원

- 국제상상력연구센터(C.R.I.) 한국지부 설립위원장 1993-94

- 미국 뉴욕주립대학(알바니) 객원교수 1996-97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1997-98

-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 2000

● 주요 저서

- 보들레르 연구 1975

- 이미지론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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