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죽지 않는다잿더미숲…언젠가 작은새들이 둥지 틀겠지
자전거는 7번 국도를 따라 태백산맥과 동해바다 사이를 내리 달린다. 강원 고성군 송현리 통일전망대를 떠나는 이 길은, 간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울진, 평해, 영덕, 포항 같은 큰 어항들과 그 사이사이의 수많은 작은 포구에 닿는다. 고깃배가 귀항하는 아침마다 억센 어부들과 목소리 큰 생선장수들로 포구는 시끌벅적하고, 붉은 해가 태백산맥의 푸른 잔등을 비추어, 7번 국도 언저리는 언제나 빛나는 산하 속에서 사람 사는 일의 활기가 넘쳐난다.
지금, 7번 국도 연변에서 바라보는 태백산맥은 푸른 산이 아니라 시커먼 산이다. 지난 4월의 산불은 능선과 계곡을 다 태우고 길가까지 밀고 내려 왔었다. 산맥에는 불 탄 나무들이 죽어서 시커멓게 쓰려져 있고, 타다 만 나무를 끌어낸 산봉우리와 능선은 빡빡 머리가 되었다.
바위들이 고열을 못 견뎌서 붉게 변색되었고, 그 뜨거웠던 바위 틈새로 파고들었던 청솔모들은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청솔모들은 한사코 바위 틈새의 맨 구석 쪽으로 머리를 처박고 죽어있었고,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도피로를 찾았던 것인지 산천을 뛰놀던 그 발바닥의 굳은살은 여러 갈래로 터져 있었다. 쫓기는 청솔모들은 불타는 산봉우리 수십 개를 넘고 또 넘어서 기력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 뜨거운 바위 틈새로 파고들었을 것이었다.
비스듬한 각도로 멀고 깊게 비치는 동해의 아침해는 산맥의 모든 계곡 구석구석에까지 닿는 것이어서 아침의 태백산맥에서는 숨을 곳이 없는데, 그 투명한 햇살이 비치는 아침마다 불타버린 산맥의 검은 잔해는 가차없이 드러난다. 거대하고도 선명한 참혹함이 국토의 등뼈를 따라 끝도 없이 펼쳐진다. 7번 국도에서는 가도가도 이 지경이다.
영동지방 숲들의 수난은 업친데 덮쳐 왔다. 96년 4월 강원도 고성군의 산불은 ‘건국이래’ 최대의 산불이고, 2000년 4월의 동해안 산불은 ‘단군이래’ 최대의 산불이라고들 한다. ‘건국이래’때 1,200만여 평이 탔다. 여의도 면적의 10배이다. 생태계의 인접피해는 불탄 지역의 3배에 달했다. 여의도 면적의 30배다. ‘단군이래’때는 ‘건국이래’때의 6배가 탔고, 생태계 인접피해 규모는 아직 모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들 전문적인 헛소리나 하고 있다. ‘건국이래’때 불탄 숲은 대부분 인공 조림되었고 극히 일부(강원 고성군 죽왕면 구성리 일대 100㏊)는 자연 복원되었다. 자연 복원이란 말 그대로 사람의 손을 전혀 대지 않고 불탄 나무까지도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렇게 4년이 지난 후 자연 복원된 구역이 인공 조림된 구역보다 훨씬 더 빠르고 건강하게 숲의 꼴을 회복시켜가고 있다.
건강한 숲이란 키작은 나무에서부터 키 큰 나무에 이르기까지 나무의 층위와 다양성을 확보한 숲이다. 사람이 보기에 무질서하고 어수선한 숲이 건강한 숲이다. 이런 숲이 복원력이 좋고 재난에 대한 저항력이 크다. 키 작은 활엽수들이 먼저 바람에 씨앗을 날려와서 불탄 땅에 싹을 틔우고, 타고남은 그루터기들이 움싹을 길러서 숲은 저절로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숲이 꼴을 갖추어가자 벌레나 작은 짐승들도 저절로 모여들었다. 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고, 사람이 공들이고 돈 들여서 한 일이 아니다. 숲은 저절로인 것이다.
숲은 죽음, 단절, 혹은 패배 같은 종말론적 행태를 알지 못한다. 땅에 쓰러진 자가 일어서려면 반드시 쓰러진 자리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처럼, 숲은 재난의 자리를 딛고 기어이 일어선다. 숲은 재난의 자리를 삶의 자리로 바꾸고, 오히려 재난 속에서 삶의 방편을 찾아낸다.
숲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따르면 산불이 쓸고 간 자리에는 큰 키 나무들(주로 소나무)이 다 죽기 때문에 햇빛이 땅바닥까지 잘 들어오고 식물의 밀도가 낮아져서 나무들끼리의 경쟁이 현저히 감소되며, 타고남은 재가 거름이 되기 때문에 나무들은 다시 이 재난의 자리를 개척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지난 96년에 불타버린 강원 고성군 죽왕면의 숲은 지난 4년동안 그렇게 죽음의 자리에서 삶을 일구어냈다. 강원대학교 정연숙(42)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96년 산불 때 나무는 죽었으나 땅은 죽지 않아서 활엽수의 타다 만 그루터기들은 움싹을 길러냈고, 풀들의 땅속줄기를 다시 살려냈다. 불난 지 5개월 후에 싹들은 다시 솟아났다. 그리고 4년 후에는 불탄 나무들이 저절로 쓰려져 없어져 갔고, 숲은 작은키 나무와 떨기나무로 층위를 이루고 있었다.
또 지난 1986년에 불타버린 고성군 거진읍 송강리의 숲은 지금 큰키나무와 작은키나무로 숲의 층위를 이루고 있다. 지난 1978년에 불타버린 강원 평창군 봉평리의 숲은 21년 후인 지금 큰키나무, 작은키 나무, 떨기나무, 풀로 건강하고도 완벽한 숲의 층위를 완성해 냈다. 모두 다 사람이 한 일이 아니고 저절로 된 일이다.
억지로 해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건국이래’때 타버린 강원 고성군 죽왕면의 숲은 지난 4년동안 저절로 스스로를 키워왔고, 검고 붉은 산을 푸르게 바꾸어 놓았다. 이 숲의 일부가 지난 4월의 ‘단군이래’때 또 불타버렸다. 인공조림 구역도 탔고, 자연복원 구역도 탔다. 영동의 숲은 타고 또 탔다. 인공 조림한 숲은 나무의 대열이 줄을 맞추어 들어서게 되는데, 다 불타버린 숲은 시커먼 그루터기들만 일렬종대로 남아 있었다.
거듭 불타고 거듭 살아나는 이 숲이 ‘단군이래’의 재난을 겪고 나서도 또 한번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질문은 어리석어 보인다. 숲은 사람의 바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기어이 다시 살아난다. 지난 4월에 불타버린 산은 나무들이 무질서하게 쓰러져있고, 흙이 푸석푸석하게 들떠서 자전거로 들어갈 수가 없다. 산밑에 자전거를 대놓고 걸어서 올라갔다. 불탄 지 한달 만에, 시커먼 그루터기 틈새에서 새빨간 움싹들이 맹렬한 기세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숲은 아주 죽지 않았다. 반쯤 타다만 소나무들도 타지 않은 반쪽으로 새잎을 내밀고 있었고, 타다만 풀뿌리에서도 싹들은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가 보면 시커먼 태백산맥은 햇빛이 비추는 능선을 따라가며 다시 눈물겨운 연두색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가물가물한 연두의 띠가 산맥의 능선을 따라서 저쪽 능선으로 넘어간다. 이 가엾은 연두가 이윽고 푸르고 넉넉한 숲을 이루어 줄 것을 우리는 믿는다. 숲이여, 살아서 돌아 오라.
●"인공조림보다는 자연복원이 효과적" - 영동산불연구 정연숙교수
지난 4월 영동 산불이 꺼진 후 강원도는 복구비로 1,200억원을 정부에 요청했다. 영동 산불을 오래 연구한 강원대학교 정연숙(42·생명과학부)교수는 펄펄 뛰고 있다. 나무를 억지로 심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정교수의 주장은 오랜 실증적 연구에 바탕하고 있다. 환경관리주의와 생태주의의 입장은 산림정책에서도 맞부딪치고 있다. 정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산림청은 인공조림과 자연복원을 병행하겠다고 하는데.
“경사가 급한 지역이나 암반지역은 자연복원하고 나머지는 인공 조림하겠다는 말은 100% 인공조림 하겠다는 말과 같다.”
-자연 조림된 숲은 경제성이 떨어지지 않는가.
“우리 나라는 목재를 95% 수입하고 있다. 숲의 경제성은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나무를 심기보다 나무를 가꾸는 일이 숲의 경제성을 위해 더 중요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숲은 재화를 공급하는 공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숲의 경제성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림 조성은 대부분 실패했거나 그 경제성이 검증되지 않고 있다. 산림청도 이걸 일부 인정하고 있다.”
-100% 자연복원을 하자는 얘기인가.
“그렇지 않다. 송이 채취구역이나 도로연변의 풍광지역, 또는 모래사태가 걱정되는 지역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역은 자연에 맡겨야한다. 제발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내버려 두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숲은 복원 능력이 있다. 조림한 경우보다 더 빨리 더 건강하게 회복된다. 입증된 연구 결과가 있다. 숲이 죽었기 때문에 새 숲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숲은 죽지 않았다. 숲은 앞으로 20년 내에 활엽수림으로 자연 복원될 것이다. 그 사례도 있다. 이처럼 자연 복원된 숲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하고 재앙에 대한 저항력과 복원성도 크다. 왜 무의미하게 막대한 돈을 쓰려고 하는가. 제발 내버려 두라, 제발 손대지 말라. 제발 아무 일도 하지 말아 달라.”
김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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