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곳곳의 그윽한 매화향기에서 연유된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梅香里). 쪽빛바다와 고즈넉한 갯벌이 너무나 평화스럽고 고와서 마을 이름도 ‘고은리’라 불리웠던가. 그러나 1951년 이래 미공군 쿠니(고은리의 영어식 표기) 사격장이 들어선 이후 매향리에는 매화내음이 없으며, 밤낮으로 계속되는 폭격및 사격연습으로 화약내음과 굉음만이 가득하다.최근 매향리 사건및 노근리 사건과 관련한 피해주민과 시민단체의 격렬한 항의시위와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미대사관 습격 등으로 한미관계는 대내외적으로 위기감이 가득한 상황이다. 그러나 시인 휠덜린이 말한 것처럼 위기가 도래할 때는 동시에 해결책도 나오는 법이다. 한미관계에 시한폭탄으로 등장한 한미행정협정 또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은 한미우호관계의 회복과 재정립을 위해 필수적인 시대적 요청이다. SOFA의 개정협상시 고려되어야 할 기본원칙과 전제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언해본다.
첫째, SOFA는 형사관할권 조항은 물론 시설과 구역, 노무, 민사청구권, 출입국및 통관절차, 관세및 과세, 보건및 환경 등 불평등하고 부당한 모든 조항을 대상으로 ‘전면’ 개정되어야 한다. SOFA는 1991년에도 부분적으로 개정되었으나, 그후에도 하루 평균 5건 가량의 미군관련 범죄와 각종 민원이 끊이지 않는 것은 불평등한 SOFA 규정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SOFA의 개정은 ‘호혜평등원칙’하에 검토되어야 한다. 21세기의 한미관계는 양국의 정상들에 의해 수차례 강조된 바와 같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대등한 동반자적 관계이다. 따라서 한국의 사법권, 과세권, 근로자보호권, 환경권 등을 침해하는 부당하고 불평등한 규정은 모두 삭제 또는 개정되어야 한다.
셋째, 방위비분담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시설및 구역의 ‘사용료’와 미군당국에게 제공되는 ‘기타 간접비용’을 방위비에 포함시켜야 한다. 미 국방부가 1993년 의회에 제출한 방위분담 보고서는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측의 직접ㆍ간접지원을 합할 경우 동맹국중 지원금액면에서 일본에 이어 2위이며 능력을 고려하면 우방국중 최고수준이라고 시인한 바 있다.
넷째, SOFA의 개정으로 ‘영역주권’을 확고히 하고 ‘민족자존심’을 회복하여야 한다. 주한미군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며, 국민의 정부 또한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피해자인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권을 적절히 보호하는 것은 국가주권과 민족자존심에 관한 문제이다.
다섯째,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주한 미군기지내와 기지주변의 환경오염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일보충협정에서와 같이 구체적인 ‘환경관련 조항’을 신설하여 국가 차원에서 철저한 대응책을 시급히 수립하여야 한다. 1990년 12월에 공표된 미국정부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서독 미군기지내의 환경오염을 정화하는데 30억 달러가 소요되는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주한미군 기지및 주변의 환경오염을 정화하는데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리라 본다.
여섯째, 시설과 구역의 사용은 주한미군의 ‘주둔목적’과 ‘군사적 필요성’에 부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미일협정과 독일보충협정에서와 같이 필요성이 상실된 시설ㆍ구역은 한국당국의 요청에 따라 지체없이 반환하도록 한다. 또한 비세출자금기관의 지나친 상업적 행위는 주둔목적을 벗어난 것이므로 슬롯머신 등을 통한 과도한 수익사업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과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야 한다.
요컨대 SOFA의 운용에 따른 제반 문제점은 호혜평등원칙하에 ‘구조적ㆍ제도적으로’ 풀어야 한다. 임시적인 사후 미봉책만으로는 반미감정의 악화, 국민의 정부에 대한 반감, 한미우호관계 및 한미공조체제의 손상 등의 크나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최승환 경희대 법대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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