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발(發) 외환위기가 인도네시아를 거쳐 북동진하던 97년10월. 관심은 온통 한국경제의 함락여부에 쏠려 있었다. 정부는 ‘펀더맨틀(경제기초)론’을 앞세워 “한국은 동남아와 다르다”는 점을 역설했지만, 시장은 이를 비웃기라도하듯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때마침 홍콩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서 당시 캉드시 IMF총재는 “한국경제는 건실하다”며 위기가능성을 일축했다. 정부관료들은 기다렸다는듯 “IMF도 한국의 펀더맨틀을 인정했다”며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혼란조장세력’정도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두달후 우리경제는 완전 침몰했다.
24일 데이비드 코 IMF 서울사무소장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코 소장은 “한국경제는 놀라운 성장을 이루고 있다. 왜 위기설이 나오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속적 구조개혁에 대한 경고도 곁들였지만 어쨌든 IMF는 최근 한국경제 위기설을 공식부인한 셈이다.
IMF가 괜찮다고하면 경제는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IMF 입장에서 한국은 결코 잃고 싶지 않는 모범생이고, 때문에 가혹했지만 지금은 관대할 수 밖에 없는 나라다. IMF의 진단을 일부러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 특유의 외교적 수사(修辭)도 늘 한번쯤 접어두고 들어야 할 부분이다.
코 소장의 언급이후 정부는 “그것봐라. IMF도 위기가능성은 없다고 하지 않느냐”는 태도를 보였다. 마치 위기논쟁에서 최종승소판결이라도 받은 양. 하지만 2년전 캉드시의 ‘빛나간 예측’을 생각해보자. IMF가 당장의 심리적 위안은 줄지 모르지만 결코 한국경제를 책임지지는 않는다.
이성철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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