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윽한 조선여인의 미소그녀는 전통적인 여성성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상쇄시키는 대상이다. 그리고 서구화가 개성으로 인식되는 도도한 흐름에 모반을 꾀하는 연기자다. MBC 월·화 드라마 ‘허준’의 예진 역, 황수정(28).
불과 7개월이었다. 그녀가 일반 연예인에서 스타로 부상하기까지.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제작진과 시청자는 그녀의 ‘허준’ 출연에 우려를 표명했다. 연기력 부재 때문이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종반부(6월 27일 종영)로 치닫으면서 ‘예진을 허준보다 먼저 죽이느냐 나중에 죽이느냐’가 작가 최완규, 연출자 이병훈 등 제작진의 최대 고민이자 시청자의 관심사가 될 정도로 인기의 정점에 섰다.
지난 해 10월 전남 낙안읍성 마을 촬영장에서 만난 그녀를 최근 의정부 MBC 야외 세트장에서 다시 만났다. 연일 철야로 이어지는 강행군으로 지쳐있다. 말 한 마디 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잔잔하고 그윽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는 변함이 없다.
“밀려드는 드라마, 영화, 광고 섭외로 인기를 실감합니다.” 그녀는 이제 건당 수억원대를 받는 최고 인기 광고모델이 됐다.
시청자, 특히 남성들의 그녀에 대한 관심의 원천은 외모와 캐릭터에서 뿜어내는 분위기다. 넓은 이마, 큰 눈 그리고 부드러운 얼굴선은 긴 얼굴에 직선이 강조되는 인조적인 서구 미인형의 득세 속에 상실된 전통적 여성성인 지고지순함을 복원시켜 준다.
그리고 ‘청춘’ ‘해빙’ ‘연어가 돌아올 때’에서 현재 ‘허준’의 예진 역까지 그녀가 맡은 캐릭터는 꼭 다문 입술에 큰 눈동자 가득 눈물 고인 비련의 여성이었다.
합리와 세련, 그리고 서구화, 인조(人造)가 현실을 지배할수록 정과 단아함, 동양적 정서, 자연스러움을 갈망하는 욕구도 커진다. 황수정은 바로 현실에 대한 현대인의 반작용으로 유발되는 갈망과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상징이다.
그녀가 ‘허준’에서 대사 연기를 할 때보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감성 연기를 표출할 때 시청자가 환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사 연기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진 역이 워낙 내면적 분위기를 드러내야 하는 캐릭터라 감성 연기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녀는 인기 최고의 스타가 됐다. 하지만 분위기와 이미지로 쌓아진 스타의 성은 역설적으로 그것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녀는 수성(守城)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 연기력이라는 초석을 다져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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