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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개혁, 확실한 비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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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개혁, 확실한 비전 필요하다

입력
200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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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경제정책의 혼선이 지속되고 있어 시장불신을 키우고 있다. 김영호 산업자원부장관은 그제 김대중 대통령에게 무역수지 흑자대책을 보고한 뒤 올해 무역수지 흑자 예상치를 당초 120억달러에서 80억-100억달러로 사실상 하향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제 열린 경제장관간담회는 무역수지 흑자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산자부장관의 발언은 사견이었다며 수출은 20억달러 늘리고, 수입은 20억달러 줄여 최대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경상수지 문제에 대해 뾰족한 대책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또 목표치를 줄일 경우 수출전선에 이완현상을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정부가 목표고수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공적자금 투입문제 등에 대한 말바꾸기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에도 그와 비슷한 행태가 아직도 여전하다는 점이다. 뚜렷한 비전 제시없이 상황에 맞춰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무역수지 흑자 120억달러를 달성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부로서는 목표치를 달성하고 싶고, 또 목표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예측이 타당성이 있다면 목표치를 수정하는 것이 정책의 효율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경상수지 악화가 걱정되는데도 정부는 그렇지 않다며 밀어붙인다면 무리수를 두게 되어 결국 경제의 왜곡을 가져올 뿐 아니라 정부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만 증폭시키게 된다.

정부의 잇따른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계속되는 이유도 바로 이같은 정부의 태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인위적인 증시 부양책은 시행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우리는 동의한다. 과거의 예로 보아 인위적 부양책은 부작용이 너무 컸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 주가가 기업의 내재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정부의 분석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며, 섣부른 위기설이 오히려 실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정부의 지적에도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정부의 금융시장 대책을 보면 그같은 점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을 시켜 불안감을 잠재우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것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시기도 늦었고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고 시장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한국투신 대한투신에 대한 공적 자금 조기 투입 등 증시 수급조절에 우선을 두고 있을 뿐 보다 근본적인 기업·금융 개혁에 대해서는 여전히 교과서적인 원론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때문에 시장은 정부가 개혁에 대해 별다른 비전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갖게 됐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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