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재된 이미지로 사회적 합의 조롱모방과 혼용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적 요체다. 공연 기획 이다의 ‘저 별이 위험하다’에는 갖가지 음악과 영상 이미지들이 편린으로 혼재돼 있다. 혼돈과 분산의 극치다. 그러나 그 어지러움들은 여기서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연극적 기능으로 집약된다. 바로 도시의 밤, 위기일로에 치닫고 있는 지구라는 별의 잡탕스런 모습에 대한 연극적 재현이다.
무대 전면을 사방 한 자 크기의 정방형으로 분산하는 쇠파이프들과 곧 쓰러질 듯한 철골 계단이 시선을 분할한다. 그 너머로는 갖가지 술 선전 포스터, 네온사인들이 도시의 어지러운 야경을 재현해 낸다. 무대 측면의 대형 영사 프로젝터에서는 아수라장의 행성 지구의 모습이 투영된다.
다양한 영상에 질세라, 갖가지 어법의 음악들이 등장한다. 격렬한 갱스터 랩, 달콤한 발라드 힙합에서 서정적 통기타 노래까지. 서태지의 힙합을 들으며 약물 환각에 빠진 청년은 도시 문명의 끝을 보여 준다.
이 연극은 그러나 영상 세대의 감각만을 좇는 매체 연극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환각을 배우들이 실연한다. 전자오락의 영상이 프로젝터 가득 살포되면, 배우들이 나와 마치 귀신처럼 흐느적댄다. 또 깡패들이 사람을 무차별 폭행하는 대목에서, 배우들은 모두 슬로우 모션 동작으로 폭력 장면을 연기한다.
여기서 뜻밖에도 재즈 발라드 ‘Over The Rainbow’가 유장하게 흘러 나오는 대목은 홍콩 영화의 폭력 장면에 버금간다. 이같은 음악적 기상(奇想)은 창녀로 전락한 천사가 병에 걸려 쫓겨나는 대목에서 흘러 나오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로 다시 확인된다.
이 연극은 곳곳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식과 이미지들을 조롱한다. 극작가 김광림씨의 풍자는 도처에 잠복해 있다. 도시 여성에게 ‘미라보’란 압구정동의 물 좋은 나이트 이름이다. 그녀와 외도하다 뜻밖에 아폴리네르의 시를 읊는 중년의 미대 교수는 ‘아폴리네르’란 이제 압구정동 옷가게 이름이 아니냐며 실소할 뿐이다. 위약해진 현재의 지식인상이다.
늙은 청소원 부부, 거지 맹인 부부 등의 서글픈 행색까지 놓치지 않는 이 연극은 도시의 밤거리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보고서다. 28일까지 아룽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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