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살 때 별나게 낚시를 좋아하던 세살바기 아들과 늘 즐겨 찾던 연못이 있었다. 그리 깊은 숲 속도 아니었건만 우리가 그곳에 있는 동안 한번도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 거의 일주일에 한번 꼴로 찾은 그 연못가에서 나는 미끼로 쓸 메뚜기나 지렁이를 잡기 바빴고, 아들녀석은 그 짤막한 낚싯대로 연신 어른 손바닥만한 물고기를 끌어올리곤 했다. 그런데 그 때 우리가 잡던 그 예쁜 물고기는 바로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로 건너와 토종 물고기들의 씨를 말리며 우리 생태계를 유린하고 있는 흉측스런 블루길이다.블루길은 사실 동물행동학적으로 무척 흥미로운 물고기다. 번식기가 되면 수컷들은 호수나 강 바닥에 제가끔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암컷을 맞이할 차비를 한다. 암컷이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곧바로 암컷의 몸에 자기 몸을 붙인 채 격렬한 춤을 춘다. 수컷의 구애춤이 마음에 들면 암컷은 그의 영역 안에 알을 낳고 그 위로 수컷이 정액을 뿌린다.
그런데 이 같은 수컷들의 영역 변방에는 풀숲에 숨어 사랑의 향연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수컷들이 있다. 그들은 영역을 지키는 수컷들에 비해 몸집이 훨씬 작은 수컷들이다. 실제로 그들은 암컷과 몸크기가 비슷한 수컷들이라 감히 영역다툼에 낄 꿈도 꾸지 못한다. 다 같이 수컷으로 태어나 남들은 다 건장한 사내로 자라서 당당히 암컷들을 맞이하는데 왜 나는 이 꼴인가 하며 자살이라도 할 것인가. 아니면 이게 다 운명이라며 체념하고 말 것인가.
몸집이 작게 태어난 블루길 수컷들은 진화의 역사를 거치며 나름대로 그들만의 차선책을 강구했다. 그들은 몸집만 암컷을 닮은 것이 아니라 냄새와 행동도 흡사하다. 구애춤을 추느라 여념이 없는 암수 사이에 슬며시 끼어 들어 함께 호흡을 맞추며 춤을 춘다. 큰 수컷이 자기 곁의 작은 수컷을 암컷으로 알고 춤을 계속하는 동안 암컷이 알을 낳으면 여장남이 먼저 잽싸게 정액을 뿌리고 줄행랑을 친다.
블루길 사회에는 또 다른 부류의 남정네들이 있다. 암컷보다도 훨씬 몸집이 작은 꼬마수컷들이다. 이들은 늘 수면 가까이 떠 있다가 어느 암컷이든 알을 낳기 시작하면 전속력으로 잠수하여 정액을 뿌리곤 다시 물위로 떠오른다. 일명 ‘성폭탄’이라 불리는 이들의 몸은 거의 전부 정자를 생산하는 정소로 가득 차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사상 최악의 교육위기를 맞고 있다. 과외를 막는데 급급한 교육부의 모습은 마치 열이 왜 나는지도 모르는 채 우선 해열제만 먹이고 보자는 격이다. 교육열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불도 없는 방에서 떡을 썰면서도 아들을 공부시킨 한석봉의 어머니를 그 누가 탓할 수 있으랴.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산물인 이상 어떤 형태로든 경쟁을 하며 살게 마련이다. 다만 다양한 방법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길을 여럿 만들어야 한다. 블루길도 몸크기만으로 자신들을 한 줄로 세우지 않건만 하물며 인간인 우리가 왜 이렇게 답답한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최재천 서울대교수 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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