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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 바꾸자](3) 사회학자 현택수의 교육이념 재정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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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 바꾸자](3) 사회학자 현택수의 교육이념 재정립론

입력
200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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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안] 학교교육 바꾸자교육분야에도 신자유주의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시장논리를 부르짖고 경쟁과 도태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가 보편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전통적인 교육이념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학교에서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장소인 사회에 잘 적응하는 늑대와 같은 인간을 길러내야 한다는 주장과 보고서가 난무하고 있다.

늑대를 닮지 말고 인간이 되라고 매질하고 가르치는 선생이 있는 곳이 학교이건만 이제 그런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어가는 것 같아 우울하다.

신자유주의의 강풍은 학교에까지 몰아닥쳐 선생과 학생들을 무한경쟁의 시장으로 인정사정 없이 내몰고 있다. 오늘날 지식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시장논리를 중시하여 저비용·고효율의 교육체제를 위한 근본적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꽤나 설득력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논리만 쫓는 '신자유주의 교육'보편화

그래서 여기저기서 학교교육의 조직과 방법을 뜯어고치려는 움직임들이 활발하다. 교육분야에 시장원리와 경영기법을 도입하며 학교조직을 뜯어고치고 업적평가와 보상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총장과 교장은 교육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최고경영자가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돈을 끌어모을 줄 아는 세일즈맨이 되어야 한다.

순수학문은 경쟁력없는 학과라는 딱지가 붙은채 폐쇄조치를 당하고 해당 학과 교수들은 거리로 내쫓긴다. 정말로 능력없고 부도덕한 선생이 퇴출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열심히 연구하는 순진한 교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쫓겨난다.

아직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학교에서 쫓겨난 교수는 그야말로 백수가 된다. 아무리 업적평가다, 연봉제다 외쳐도 대학은 실력과 상관없이 일부 교내외 정치교수들이 휘어잡고 각종 상이니 표창은 독식하고 학생지도와 학사행정도 제멋대로 한다.

교수 업적평가는 공정해야 하는데도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경영혁신 수단으로 채택된 인센티브제도도 나눠 먹기식으로 변질되고 있으니 말이다.

학계에선 엉터리 번역책에 번역상을 주고, 엉터리 인용과 표절로 점철된 책에도 저술상을 수여하는 등 웃지 못할 행태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학생은 냉혹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고액과외를 하든지 커닝을 해서 일류대학에 가야 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학생들은 고시준비 아니면 주식투자나 벤처창업에 눈을 돌리니 정상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토플, 토익강좌에 학생들이 그득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쯤 되면 교육의 전통적 개념조차 흔들리지 않을 수 없고, 교육이념도 사라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불어넣은 신교육개념이란 자본과 시장경쟁을 통하여 남을 이기고 성공하여 출세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인가.

자기 이익만을 위하고 자기 중심주의적인 인간형을 만들어낼 작정인가. 그러면 시험에 떨어지거나 삼류대학에 다니는 자들은 인생의 낙오자, 패배자들이란 말인가.

신자유주의적 교육에는 학생들을 경쟁시켜 시험보고 등급을 매겨 학생과 학교를 분류하며 그 분류를 사회적으로 정당화하고 고착화하는 비인격적 교육개념이 담겨 있다.

순수학문 "경쟁력 없다"폐지 출세만 가르쳐

세계 제일의 뜨거운 교육열은 자랑할 게 못된다. 과연 그런 열망이 무엇에 기반한 열망인가가 문제다. 지옥 같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사람 대접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비인간적인 사회 때문에 그런 비정상적인 교육열풍이 부는 것이 아닐까.

절대 남한테 져서는 안되고, 남이 잘 되면 배아프고, 어떻게든 짓밟아야 속이 풀리는 근성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요 사회다. 그러니 학원에 다니든지 고액과외를 하든지 간에 무조건 일등을 하고, 이기고 봐야 한다는 것이 지상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우등생과 꼴찌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공동체의식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시장논리를 도입한 현 교육정책은 전통적 교육이념이 상실된 듯이 보인다. 신자유주의는 신교육이념에 입각한 신지식인을 요구한다.

그러나 학교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인 단체가 아니다. 학교는 냉혹한 적자생존의 사회논리를 가르치고 싸움터에 나가는 병사를 길러내는 병영도 아니다.

학교는 공부마치고 사회에 나가 저 혼자 잘먹고 잘살라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못먹고 못배운 사람들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길러내야 하는 곳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 집중과 과도한 시장경쟁으로 우리 사회는 더 비인간화하며 갈등과 반목이 커지고 있다. 이럴수록 교육의 정도(正道)를 상기하여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꾀하여야 한다. 수능시험, 입시제도도 이러한 교육이념의 연장선 위에서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교육원칙만을 주장하는 내가 어리석거나 위선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사실 나도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을 비판은 하면서도 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 곧잘 패배감과 회의에 빠지곤 한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강단에 서면 어쩔 수 없이 혼란스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현실은 냉정하고 무섭게 자기 변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솔직하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인기있는 학과에 진학하여 학점 적당히 딴 다음 취직 잘해서 돈 많이 버는 게 인생의 최고 목표라고. 그리고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있는 교육이라고.

사실 지금까지 누가 교육이념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의 내용 및 교육의 질을 따져왔는가. 학생과 학부모 모두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간판만 따려고 대학에 가지 않았던가. 선생도 교수도 철밥통 신분의 안전과 권위에만 의존하여 자기 배 불리기에만 급급했지, 언제 학생과 이 사회,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봤을까.

일등과 꼴찌가 함께사는 공동체교육 절실

교육이념에 대한 철저한 신념과 실천의 부재에 따른 이 모든 문제는 그동안 안이한 자세로 태평성대를 누려왔던 일선 교육자들과 교육행정가들, 그리고 학부모 모두가 자초한 결과다. 반성하고 개혁할 일이 많다.

교육계 스스로 자정과 개혁이 되지 않으니 국가가 나서고, 시장경쟁의 타율적 논리가 교육의 자율적 영역에 개입하여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우리의 교육방식과 교육체계에는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다. 그중 몇 가지만 예로 든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현 교육체계는 학생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사는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고, 교수는 구시대적 권위를 갖고 낡은 강의록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학교 지식교육의 수준과 질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기업과 산업현장의 지식과 기술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학교가 현실 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무능력한 고학력 일꾼들을 양산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창의성있는 인성 교육을 위해서는 암기 위주의 지식 주입 교육방식은 없어져야 한다. 재미없고 효과없는 기존의 주입식 교육방식 때문에 학습의욕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교실붕괴현상도 일어난 것이다.

창의성과 진취성을 길러내기 위해서 대학 입학 전부터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분야의 교과목들을 선택하여 학습 집중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서는 전공이나 부전공 과목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스스로 학과목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마련해 줘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이 전공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학부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지극히 형식적인 운영이 많다.

그리고 창의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교과서에 의존하는 기존의 낡은 교재사용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선생과 교수는 급변하는 사회환경을 반영하는 교재를 개발하는 한편, 학생 스스로가 자율학습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제 정보지식은 학교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생이나 학생 누구나 컴퓨터,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전자도서관, 전자책, 인터넷 등 다양한 지식 정보 소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선생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고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계발하는 지식을 얻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하기에 이르렀다. 지식의 양이 엄청나고 그 전파속도도 빠른 디지털시대에 맞는 명실상부한 교재개발과 학습지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교육이 가능하도록 정부와 기업은 정보통신 기간산업에 투자를 해야 한다. 사이버교육은 하나의 대안 교육방식이 아니라 미래의 주류학습방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학교는 특성화·다양화·자율화해야 한다. 획일화한 교육체계 위에 오로지 경쟁과 탈락의 논리로서 대학의 서열화가 고착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온 국민이 일류대학병에 걸려 있고 학벌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소위 국내 명문대학이라 해도 세계적 수준에는 턱도 없이 보잘 것 없다.

우리 대학은 대학 특성이나 학과 특성도 없고, 대학교 서열만 있지 최고 학과별 순위는 없다. 이런 왜곡된 대학 서열구조를 심화시키는 것은 정부의 선택과 집중의 파행적 지원방침이다.

특히 국립 서울대학교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지원은 전체 대학의 특성화·다양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선택받은 자들에 대해 온 국민이 내는 세금을 쏟아붓는 정부의 선택적 집중 지원과 배제의 논리는 교육이념에도 위배된다.

서울대를 해체하고 단대별로 지방캠퍼스로 분산·이전하여 특성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지역 간의 학문교류와 균등한 사회발전을 꾀하고, 자기 사람 심어 파벌만 조성하는 현 교수임용방식에 제동을 걸기 위해, 국립대 교수들도 일반교사처럼 지방 순환근무를 시킬 필요가 있다.

창의.진취성 키우고 학교 특성.다양화해야

대학들은 공정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는데, 교육정책이 기득권을 가진 학교들에만 유리하게 시행된다면 대학간 갈등과 문제 발생의 소지가 많은 건 당연하다. 교육과 학문정책에도 차별과 배제의 원칙보다는 기회균등과 포용의 원칙이 있어야 하겠다.

한편 대학은 스스로가 자율과 책임감을 갖고 특성화·전문화를 꾀하고 이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순수 학문 보호, 학제간 연구, 산학연계를 위해 대학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균형있는 교육 투자 및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 길만이 학문과 교육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중·고등학교의 특성화와 다양화를 위해서 우선 전문성 있는 교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충원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체되어있는 교육현장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서 현재 사범대학 중심의 교원양성이나 임용고사에 의한 교원 선발제도의 폐지를 고려해 볼만하다.

전문지식을 가지고 소정의 교직과목만 이수하면 누구나 교단에 설 수 있게 하여,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학생들의 적성과 능력을 찾아 길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교육이 부실화하고 특성화가 안된다면 교육의 개성과 다양성을 모색하는 특수학교, 대안학교 등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편 평생교육체계를 갖춰 사회인 모두에게 문을 개방하고 재교육시키는 특성화학교가 많이 필요하다. 학교를 떠나면 이제 공부는 그만해도 되는 것인가.

자신의 능력 향상을 위해서 교육의 최종단계가 있는 법은 없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노소가 새로운 정보, 지식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학교는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앞으로 컴퓨터,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평생교육체계 확립에 더욱 더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현택수교수 약력

-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1982)

- 파리 8대학 사회학석사(1986)

- 파리 1대학(소르본느) 사회학 박사(1993)

- 한국방송개발원 신임연구원(1995-1997)

-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사회학과 부교수(1997-현재)

● 대표저서

- 문화와 권력(편저) 1998

- 현대사회의 구조와 변동(공저) 1996

- 그래도 나는 벗기고 싶다(문화비평집)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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