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붕괴의 후유증에 ‘일본주식회사’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이 일본 재계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그러나 도요타자동차의 ‘사람을 지키고(人守), 사람을 살리는(人活)경영’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회장은 “고용을 지키지 못하는 경영자는 할복하라”고 외친다.
도쿄(東京)증시의 폭락 장세 속에서도 도요타자동차의 액면가 50엔짜리 주식은 5,000엔대의 안정세를 유지하며 시가총액은 19조엔을 넘어섰다.
1999년도(3월말 기준) 순익은 1998년도보다 14.2% 늘어 사상 최고인 4,068억엔에 이르렀고 기간중 자동차 판매 대수도 500만대를 넘어 세계 최고였다.
도요타는 자동차업계의 세계적 재편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다. 3월말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三菱)자동차의 자본 제휴 합의로 일본의 자동차메이커 11개사 가운데 7개사가 외국업체와 제휴했다. 혼다(本田)기연공업과 도요타그룹 3개사만이 남았다.
오쿠다회장은 22일 서울에서 가진 회견에서도 “아직 준비중인 외자 제휴는 없다”고 확인하면서 “독자 기술개발에 힘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본 제휴를 통한 덩치키우기보다는 독자 기술에 승부를 건다는 점은 혼다와 닮았다. 차세대 자동차인 연료전지차(전기자동차) 개발이나 그 과도형인 ‘하이브리드카’, 자동주행시스템 개발 등에서 도요타가 세계 정상의 기술을 확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쓰비시자동차는 세계 최초로 직분사 엔진을 상용화하고도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적 과잉생산 국면인 자동차시장의 생존경쟁이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도요타를 지탱하고 있는가. 최근 일본 언론의 잇단 분석에서는 인간 중시 경영과 함께 ‘혈연공동체’‘위기의식’등이 공통적으로 꼽혔다.
인간 중시 경영은 ‘도요타 생산방식(TPS)’의 핵심이다. 생산성 향상에 따른 여유 인력을 그대로 남겨 자기 노력을 통한 품질·생산성 향상으로 다시 연결하는 방식이다. 핵심 작업을 로봇 대신 사람이 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적 분위기의 중심에 창업 가문의 화목이 존재하는 것도 특이하다. ‘중시조(中始祖)’격인 도요다 에이지(豊田英二)최고고문과 쇼이치로(章一郞)명예회장, 다쓰로(達郞)전사장 등은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의 정책결정에 관여한다.
에이지의 2남으로 고급차 ‘렉서스’를 탄생시킨 데쓰로(鐵郞)는 도요타자동직기 전무로, 3남으로 소형차 ‘비츠’를 개발한 슈헤이(周平)는 이사로, 쇼이치로의 장남인 다케오(章男)는 인터넷전략을 지휘하는 ‘Gazoo’의 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역대 사장은 늘 위기의식을 강조해 왔다. 숙명의 라이벌 닛산과의 대결, 금융기관의 대출 경색 등 위기의식의 내용은 그때마다 달랐지만 그룹 전체의 분발을 불렀다.
금융경제 시대에 2조5,000억엔의 사내 잉여금을 예치하고 있는 ‘바보같은’ 관행도 항상적 위기의식에서 비롯했다. 지금은 ‘혼다 위협론’은 물론 ‘현대 위협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고 도요타가 변화에 둔감한 것도 아니다. 외자와의 제휴 대신 히노(日野)자동차(트럭), 다이하쓰(소형차)에 대한 출자를 늘려 자체 종합생산망을 갖추었다.
한편으로 통신인프라는 물론 휴대폰 제조, 주택 건설, 신용카드 등 다양한 업종으로 사업을 넓혀 ‘24시간 소비자가 도요타와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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