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열티만 지불하는 문화적 봉?국내 굴지의 미술관은 지난해 큰 망신을 당할 뻔 했다. 해외 작가의 전시를 하면서 외국 포스터를 그대로 국내에서 제작했는데, 포스터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스페인 대행사가 ‘무단 도용’이라며 법적으로 대응할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포스터를 폐기 처분하는 선에서 겨우 일을 처리했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전시된 작품을 비디오 촬영해 미술관에서 판매했는데, 이것 역시 명백한 저작권 침해였다. 국내 대행사의 ‘선처’로 이 역시 전량 폐기하는 차원으로 마무리됐다. 저작권 개념이 비교적 명확한 미술계에서, 그것도 대기업 미술관에서 이 정도니 저작권에 관한 인식은 아직도 뿌리조차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셈이다.
지난주 법원에서 뮤지컬 ‘캣츠’의 공연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저작권 문제가 또 다시 문화계 전면에 떠오르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우리 문화계.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외국에 로열티만 지불하는 문화적 ‘봉’으로만 남아있을 것인가. 우리 작품은 로열티를 받을 수 없는가. 그런 노력은 없는 것일까.
전용관을 짓는 등 문화산업의 길로 뛰어 든 환퍼포먼스(대표 송승환)의 ‘난타’는 국내 연극계에선 처음으로 상호를 정식 등록, 로열티를 받은 경우다. 1998년 ‘Nanta’라는 상호를 정식 등록, 지난 9월 게임기 전문 제조업체인 아이 솔루션과 로열티 협정을 체결했다. 불빛을 따라 스틱을 두드리며 춤추는 아동용 DDR기 ‘난타’는 로열티를 물고 나온 게임기.
국내 연극을 해외에 수출, 저작권을 ‘돈’으로 환산해 받는 것은 아직 난망하다. 한국적 연극을 추구해 외국 극단들이 즐겨 상연하는 극작·연출가 오태석씨 경우. 그의 ‘춘풍의 처’는 일본과 영국 극단이 공연했다.
그러나 양측은 저작권 문제를 두고 ‘거래’하지는 않는다. 대신 외국 극단은 언론의 반응, 공연 성과 등을 꼬박꼬박 알려 준다. 밑지는 장사만은 아니다. 이같은 경우가 반복돼야 언젠가 우리나라도 로열티를 지불받는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국내의 무용안무가들은 대부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저작권을 챙기지 않고 있다. 공연 실황을 방송하겠다고 하면 알려진다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 저작권료 달라는 소리를 안한다. 무용가들이 정식으로 방송의 저작권료를 주장해 받은 것은 1998년 제1회 한국 발레스타 갈라공연이 처음이다.
외국 작품의 저작권 침해도 잦다. 예컨대 조지 밸런신의 발레 작품을 공연하려면 밸런신재단에 저작권료를 물고 그쪽에서 보내는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아야 하지만, 이 과정을 빼먹어 망신을 사기도 한다. 이처럼 엄격한 관리는 작품 훼손을 막고 공연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클래식음악의 경우 저작권 보호를 받는 외국 작품을 연주하려면 음악저작권출판사에서 악보를 사거나 빌려와야 한다. 빌릴 경우 관현악곡 악보값은 대개 70만-80만원. 그러나 몇년 전까지만 해도 악보를 손으로 베끼거나 복사해서 쓰는 일이 많았다.
밀리언셀러 가수 조성모의 리메이크 앨범 제작자는 로열티 방식이 아닌 곡당 200만-300만원의 사용료를 지불했다 한국대중음악작가연대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대중음악 저작권을 관리대행하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가 지난해 4,000여 회원에게 지불한 저작권료는 300억원 수준.
그러나 유명작곡가들은 아직도 개별적으로 저작권을 챙긴다. 저작권협회의 확실한 저작권 감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음악저작권은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MP3, 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형태의 복제권 개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미술계는 올해부터 미술도판 사용에 대한 제한이 엄격해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1997년 이후 발행한 서적이 미술도판을 무단으로 사용했을 경우, 정상 사용료보다 최소한 2배의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 현재 도판저작권은 출판저작권회사인 이카(ika)의 자회사인 SACK에서 주로 관리한다. 책 절반 정도 그림 한 컷당 많게는 컬러 10만원, 흑백 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 출판사들은 미술서적 출간을 꺼린다.
국내 작가들의 저작권은 공식적인 틀로 아직 자리잡지 않았다. 저작권협회나 가나아트 등에서 관리를 하긴 하나 화가와 출판사들이 인맥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작가들이 나서서 저작권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다.
다른 장르에 비해 출판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가장 확고하게 정립된 부문. 대부분 책값의 5% 정도를 로열티로 지불한다. 국내외 작가에 대한 로열티 지불 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외국에서 로열티를 걷어올 차례다. 그러나 소수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나라 출판물이 해외에서 로열티를 받아오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좋다. 수년전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가 일본으로 수출된 경우가 있지만 거의 희박하다.
방송은 아예 ‘표절’을 하지 외국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 지불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좀 다르다. 작년 MBC 오락프로그램 ‘이브의 성’은 ‘포맷 수입’을 통해 일본에 사용료를 지불했다. 반대로 KBS는 MIP(방송프로그램 견본시)에서 ‘TV는 사랑을 싣고’의 포맷을 스페인에 수출했다.
지난해 지상파와 케이블, 독립제작사 등의 수출 총액이 1,274만불, 수입 총액은 2,873달러로 수입액이 수출액의 2.3배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역조다. 장르별로는 드라마가 50%로 최대이며 애니메이션 20%, 다큐 6% 순이다. 지역별로는 중국 홍콩 등 대 아시아 수출이 90% 이상.
‘선 제작 후 수출’이 아니라 기획단계에서부터 수출성사 가능성 및 목표시장 등을 치밀하게 분석, 프로그램의 종류나 포맷 등을 국제시장의 요구수준으로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용평론가 장광열씨는 저작권 강화가 예술가의 권리와 창작의욕을 높이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승부하고 정당한 저작권료를 받음으로써, 창작 여건이 개선되고 시시한 작품은 발을 못붙이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저작권료를 받으며 수출할 수 있을 만큼 경쟁력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게 공공 지원방향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 개념과 관리
저작권은 문학·학술·예술 분야 창작물의 저작자가 갖는 권리다. 출판·방송·공연·전시·음반 등 여러 가지 유통 경로에서 작품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저작자의 허락에 달렸고, 그 과정에서 저작자가 돈을 안받아도 좋다고 하지 않는 한 저작권료를 지불하게 돼있다.
도서나 음반에 주로 집중됐던 저작권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사이버 공간의 저작권 등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1월 공포된 개정저작권법은 인터넷이나 PC통신에 올라있는 각종 컨텐츠의 무단 전재 등을 막기 위해 온라인상의 전송권을 신설하고 있다.
저작권은 작가의 사후 50년까지 보호받게 되어있다. 그러나 자기 작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작가가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려우므로 저작권 관리업체가 대행한다. 현재 국내 저작권 집중관리 단체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02-3660-0900), 한국방송작가협회(02-782-1696),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02-508-0440), 한국예술실연자단체연합회(02-745-8286), 한국음반협회(02-922-6612)가 있다.
저작권 업무를 총괄하는 정부 산하 기구로 한국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인터넷
http://www.copyright.or.kr)가
있다. 이 위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저작권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구할 수 있고 상담도 할 수 있다.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상담과 소송도 늘고 있다. 한국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의 지난해 상담건수는 전년보다 35.7% 늘어난 2,784건에 달했다.
●카피레프트 운동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한다면 당연히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황금률이라고 생각한다.”(리처드 스톨먼)
지적인 재산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함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기반에서 출발한 카피 레프트(Copy Left) 운동. ‘레프트’는 왼쪽이라는 뜻 외에도, 방치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MIT의 인공지능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리처드 스톨먼이 주창한 이 개념은 저작권이 저자의 창작 권리를 증진시키는 차원을 넘어 자본의 배타적 이익만을 반영해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무한정 복사가 가능한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을 통해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급하고, 버전업하자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소프트웨어의 원본을 재가공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쉐어웨어(Share Ware)’의 개념과 남의 것을 그냥 공짜로 복사해 팔아먹는 ‘범법 행위’와는 다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독점적 소프트웨어 보급에 대항한 다양한 형태의 ‘리눅스 보급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리눅스는 참여자가 계속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방식.
국내에서도 1994년 겨울 서울대에서 ‘정보연대 SING(Social Information Network Group)’이 생겨 정보의 상품화 반대 논리를 폈으며, 진보진영의 이론을 복제해 일반인에게 전파하는 ‘읽을꺼리’라는 부정기 간행물을 배포하는 ‘카피레프트 모임’도 활동 중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