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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열전] (15) '지하철 1호선'의 이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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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열전] (15) '지하철 1호선'의 이황의

입력
200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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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가장 오래탔죠"이황의(34)에게 극단 학전의 ‘지하철 1호선’은 그의 30고개를 넘게 한 공신이었다.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의 밤길은 힘겨웠던 30대 고개를 밝히고, 속살을 영글게 했다. 그는 24일로 통산 공연 회수 1,131회를 맞는 이 롱런작의 최장기 출연 배우다. 700여회. 초연 4개월 뒤인 95년 이래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99년 겨울 서울 중부시장에서 3,000원을 주고 산 누더기 옷을 입고 한여름 연습장을 달궜다. 어떻게 해서든 더러워 보여야 한다. 땀 닦을 때 꼭 사용하고, 얼굴은 밤색 메이크 업 파우더로 까만 윤을 낸다. 그의 특기, 땅쇠(지하철 히피족)로 변신하기 위해서다. 점퍼만도 지금까지 네 번 바꿨다.

지금 그가 소화해 내는 역할은 땅쇠를 비롯, 강남싸모님, 윤락가 포주 등 모두 14개. 사실 그는 87개 배역 중 30여개 역밖에 못한 게 아쉽다. 특히 588 영업상무 칠수, 자해공갈범 빨래판, 랩으로 손님 끄는 잡상인 등은 꼭 해 보고 싶은 역이다. 사실 히피족이나 진배없던 그의 청춘을 다잡아 준 은인, 연극에 진 빚을 갚는 데는 그 이상 없을 듯 해서다.

그는 대학을 못 다녔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세상을 뜬 가난한 집안의 2남 3녀 중 막내. 86년 충암고를 졸업한 그에게 대학은 멀었다. 생활을 위해 낮에는 세일즈맨으로 뛰는 와중에도, 밤이면 피아노 학원에 다녀 체르니 100번까지 뗐다.

그는 빨리 생활에 안착하길 바라던 어머니를 떠나, 87년 한 해 꼬박 명동 창고 극장문을 두드리고 사무실 지기를 자청했다. 겨울밤이면 아예 얼음 창고가 돼 버리는 곳이었지만, 고교 2학년 때 몰두했던 연극에 그렇게 해서라도 가까워지고 싶었다.

88년 해금된 김지하의 ‘금관의 예수’ 초연 무대에 참가한 그는 95년 극단 학전의 오디션에 통과, 여기까지 왔다. 물론 그가 ‘지하철 1호선’에만 매달렸던 건 아니다. 틈나는대로, 그는 ‘공포연극제’, ‘토파즈’ 등 동년배 연극인들의 활동에 동참했다. 특히 극단 길라잡이가 대구·광주 등 지방은행을 순회하며 펼쳤던 ‘너희가 은행원을 아느냐’의 감동은 잊혀지지 않는다. 구조조정 문제를 다룬 이 연극을 보던 은행원들의 과반수가 공연 도중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지하철 1호선’에 유독 애정을 쏟는 것은 “이 작품이 내게 주는 즐거움 때문”이라 한다. 특히 588에서 걸레가 세상에 절망하고 손목을 긋는 대목 때, 그는 분장실에서 대기중이지만, 객석의 전율이 소름 돋듯 감전돼 온다 했다. 최고참임에도, “매회, 나는 부족함을 느낀다”는 이황의. 자신의 빈 곳을 보게 하기에 결국 이 연극을 뜨지 못한다는 그는 “스타라는 완성품은 허무하다”고 말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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