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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상상이 실현되는 세계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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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상상이 실현되는 세계의 초대

입력
2000.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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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는 외계인 혹은 혁명군?프리터(아르바이트로 최소 생계비를 벌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인 A양. “돈을 모은다거나 할 생각은 없으니까 무리하지는 않아요. 너무 일을 많이 하면 게임할 시간이 없잖아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B군. 고등학교 졸업 후 4년 동안 줄기차게 해온 게임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인 ‘도키메키 메모리얼’이다.

“시오리 (사랑의) 고백만 천번 이상 받았어요. 하지만 언제라도 고백받는 순간은 두근거리고, 흥분이 돼요. 사랑을 향한 나의 노력이 성과를 맺는 순간이니까.” 정상인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저자의 말마따나 게이머는 새로운 세계와 접속하는 외계인이기 때문일까.

‘게임, 세계를 혁명하는 힘’은 제목 만큼이나 논쟁적인 과제를 던진다. 게임이 새로운 세계를 욕망하고 혁명하는 힘이라니. 그렇다면 게이머들은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의 혁명군인가?

마치 공장이 프롤레타리아라는 새로운 종족을 형성시킴과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 변혁군으로 만들었다는 마르크스의 논리처럼, 저자는 게임산업이 역설적으로 ‘게이머’라는 세계를 변혁하는 새로운 주체를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만만찮은 반론이 제기됨 직한 대목이다. 어쩌면 ‘혁명’이니 ‘욕망의 실현’이니 하는 것들은 게임산업을 변호하려는, 혹은 현실로부터 낙오되거나 도피하려는 게이머들의 수사학적 위장은 아닐까.

● 환각의 긍정?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현실은 인간의 욕망이 실현되기에 너무 단단한 현실원칙이 지배한다. 그러나 게임에선 게이머 자신의 욕망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자유의 공간이 펼쳐진다. ‘나르는 용을 타고 백년 동안 잠들어 있는 공주를 구하러 갈 수도 있고, 전세계의 공산주의화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꿈을 펼칠 수도 있고, 이상적인 여인과 사랑을 속삭일 수도 있다’

마치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는 듯이 들리지만, 우선 반론 하나. 그 욕망 충족이란 것은 일종의 환각이 아닌가. 마약의 백일몽과 뭐가 다를까. 이에 대해 저자가 들이대는 것은 ‘욕망충족의 현장감’이다.

단순한 메커니즘에서의 욕망은 코 풀고난 휴지의 운명처럼 쓸쓸히 버려지지만, 게임은 온 몸 구석까지 욕망이 편안히 기거하게끔 만든다. 현장감 때문이다. 더욱이 피폐한 현실이 아니라 상상만으로 가능했던 상황이 눈 앞에서 실현된다. 그것도 상호작용하면서. 그래봐야 가상적인 자기만족과 위안, 도피적 환각이 아니냐고 따질 수 있지만 저자의 답변은 간단하다. 그게 뭐가 나쁘냐는 것이다.

내일을 위한 투자, 즉 축적이 없기 때문에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할 수 있다. 몇 달에 걸쳐 게임 속에서 자기 왕국을 건설해봐야 그걸로 끝이다.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 욕망의 지출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답한다. ‘내일이 오늘로 바뀌는 것은 언제인가.

게임은 즐거움만을 위해 온전히 쓰여지는 순수한 자신만의 시간이다. 그것은 빼앗겼던 자기 시·공간의 회복이다’

저자의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은 게임이 결국 좌절된 욕망의 폭력적 투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네트워크 게임 ‘리니지’가 대표적이다. 현재 200만 명이 가입해 청소년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폐해는 계속 지적돼왔다.

소유와 집착, 경쟁과 폭력의 난무. 욕망은 해방된 것이 아니라 또다른 현실논리에 감금된다는 주장. 저자 역시 이런 상황을 우려한다. 현실의 사회관계를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상상의 세계는 일그러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리니지’는 폭력성만을 노골화해 게이머의 욕망을 속박하는, 구조적으로 잘못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말한다.

● 게임세계로의 안내 지도

여기서 저자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게임에서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돈벌이의 수단만으로 악용되는 게임을 비판하면서 진정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게임 세계로 안내하고자 한다. 이 책의 의의도 이 곳에서 찾을 수 있겠다.

수많은 게임을 섭렵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각 게임에 대한 충실한 비평은 게임 초보자뿐만 아니라 숙련된 게이머에게도 성찰의 기회를 준다. 게임 일반론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저자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우리의 게임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다양한 형태와 장르의 게임이 존재하지만 국내에서는 극히 몇 개의 게임만 통용되고 있다. 게임문화를 무시하는 한편, 상업적 목적으로서만 게임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 WHO? /저자 박상우(朴商友)

34세. 운동권 출신의 게임평론가다. 1994년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할 때만 해도 그는 사회 현실에 밀착하고자 했던 경제학도였다. 이후 철학으로 눈을 돌려 ‘미셀 푸코의 과학적 이성의 고고학’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러다 게임에 빠졌다.

그가 섭렵한 게임수는 수백종. 물론 중학교 때부터 늘 해오던 게임이었지만 철학적 안목으로 다시 돌아 본 게임은 새로운 세계였다. 1997년부터 게임 평론을 쓰기 시작해 게임평론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현재 주간지, 게임잡지 등에 게임평론을 쓰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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