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물정을 알 만큼 알고 돌아볼 만큼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았기에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다고 자부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정말 부끄럽게도 내가 태어나 성장한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나를 발견할 때마다 분노를 넘어서 서글픔을 느낀다. 말 그대로 세계인이 되기 위해, 인종적 편견과 문화적 열등감, 거짓 민족주의의 허상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건만 여전히 한국인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면 망연자실하다.1999년 1월 나는 우리 환경단체 관계자 등과 함께 네덜란드의 아쎌 딕스 방조제를 걷고 있었다. 새천년을 앞두고 환경 선진국들은 어떻게 환경문제를 풀어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여행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1932년에 장장 32㎞의 아쎌 딕스 방조제를 쌓았다. 거의 70여년전 일이다. 우리도 지금 32㎞의 새만금 방조제를 쌓고 있다. 세계 최장이요, 민족의 대역사라 난리다. 70여년전에 쌓았던 방조제보다 불과 몇백m 더 길다고 세계 최장이라 자랑하는 것은 무언가 덜 떨어진 구석이 없지 않다.
방조제 위를 거닐면서 우리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고 갯벌을 지키는데 앞장서자고 새삼 각오를 다졌던 것같다. 그런데 도중에 우리는 한사람이 돌을 들어 올리려고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발견하였다. 헌데 가까이 다가가도 그 사람은 같은 자세로 있었다. 아,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아니고 조각상이었다. 조각상에 다다르면서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 조각상은 32㎞ 방조제 대역사의 기념상이었다. 이름모를 노동자들에 대한 경의였고, 노동에 대한 경의였던 것이다. 그것은 아름답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망망대해 앞에서 그는 여전히 일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이 정도의 큰 일이라면 우리들은 수백배의 기념비를 세웠을 것이고 노동자는 간 곳없고 대통령 이름이 대신 쓰여져 있었을 터였다. 이런 착상을 감히 엄두나 낼 수 있었을까.
우리는 매일매일 문화를 만들어나간다. 그것은 보이게 보이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결정하고 또 나도 그렇게 행동한다. 말로만 말하는 민주주의는 민주가 아니다. 작은 것, 보잘 것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이 민주의 기초이고 꽃이 된다.
/임옥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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