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대장정의 인간게놈프로젝트가 6월15일 모습을 드러낸다. 국제공동연구의 주축인 미 국립보건원(NIH)산하 인간게놈연구소(NHGRI)는 이날 인간게놈 1차초안(Working draft)을 과학저널(네이처지와 협의 중)에 공개할 예정으로 막바지 연구에 가속을 올리고 있다. 반면 민간기업인 셀레라 지노믹스사는 이보다 한발 앞선 완전한 게놈지도를 올해 안에 과학저널에 공개한다고 밝혔다.중복투자에 대한 비난여론, 서로의 연구신뢰성에 대한 비판 등 신경전 속에서도 정부와 민간의 경쟁 덕분에 게놈연구의 행보는 빠르다. 정부와 민간 두 게놈연구자의 인터뷰를 통해 연구현황과 이후 연구계획을 알아본다.
■ 인간게놈연구소 제인 피터슨
미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 대량염기분석 책임자 제인 피터슨박사는 “6월15일 인간게놈 1차 초안을 공개할 계획으로 현재 16개 연구소가 보내오는 자료를 모아 오류를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간게놈의 염기수는 알려진 것보다 1억개 많은 31억개로 추정되며 내달 발표될 1차 초안은 그 90%(28억개 염기)에 해당된다.
분석 정확도는 99.9% 즉 1,000개 염기마다 한개의 오류가 있을 정도로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 정보는 지금처럼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의 유전자은행(Gen Bank)에서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1차 초안이 마무리되면 99%의 유전자가 밝혀진다는 점. 게놈은 단백질을 생성하는 정보부분 즉 유전자와 아무 기능이 없는(최소한 현재 과학수준으론) 단순반복부분이 섞여있는데, 내달 발표될 1차 초안에는 유전자의 99%, 인간유전자가 10만개라면 9만9,000개가 밝혀지는 것이다.
피터슨박사는 “후속 연구인 유전자의 기능연구 진행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그 의미를 밝혔다. 10여년간 30억달러(3조3,000억원)을 들인 게놈프로젝트는 비로소 인간 유전자의 이름이 확인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각 유전자의 역할을 밝히는 일은 이제 시작이다.
피터슨박사는 “1차 초안이 완성된 후 인간게놈연구소는 빈 간격이 없이 각 유전자 위치가 정확히 확인되는 완전한 지도작성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예정대로 2003년 완성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완전해독 부분은 20%정도다.
이 밖에 인간게놈연구소는 쥐 등 모델동물에 대한 게놈해독, 100~1.000개 염기마다 하나씩 있는 개인간 염기변이(SNP)발굴, 바이오칩 등을 이용한 유전자기능분석, 인간과 각종 동물을 비교하는 비교생물학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정부측 연구는 모두 공개되며 각 기업이 신약이나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에 필요한 기초연구로 이용되고 있다.
피터슨박사는 셀레라의 게놈자료에 대해선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성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 셀레라 지노믹스사 폴 길만
셀레라 지노믹스사는 올 연말 게놈지도를 완성하며 9억달러(약1조원) 규모의 2단계 연구에 착수했다. 셀레라 정책기획책임자 폴 길만은 “6월 정부측이 인간게놈 1차 초안을 발표하면 우리 자체 데이터베이스로 보완, 올해 안에 완전한 지도를 완성, 과학저널을 통해 공개하겠다”며 “이는 국가주도 게놈연구보다 몇 년 앞선 것”이라고 말했다.
2단계 연구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밝히는 연구, 유전자 기능분석, 유전자 변이 연구, 신약개발의 타깃을 찾는 연구, 단백질을 생성하지 않는 유전자의 생성물 등 ‘게놈연구결과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하는 전반적 연구다.
전체 400명의 직원 중 60명의 연구자가 유전자 기능분석을 맡고 있으며(연구결과는 비공개) 연구대상도 인간 외에 쥐 소 개 등 모델동물, 박테리아, 농작물 등으로 확장했다.
1998년 설립된 셀레라가 지금까지의 1단계 게놈연구에 투자한 비용은 3억2,000만달러(약3,500억원). 셀레라는 세계 최대의 슈퍼컴(1억달러)과 DNA 자동분석기(9,000만달러) 등 주로 막대한 자동화설비에 투자했다. 2단계 연구는 그 3배인 9억달러가 드는데 이 자금 역시 주식시장을 통해 조성할 계획이다.
후속연구 중 눈에 띄는 것은 단백질연구에 대한 투자. 길만은 “단백체학(Proteomics·유전자의 염기서열을 규명하듯 단백질의 아미노산서열과 구조를 밝히는 연구) 설비에 큰 부분이 투자될 것이며 지금 진행중인 프로테우믹스 설비는 3개월내 설치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테우믹스는 신약개발 등에 필수 연구지만 게놈프로젝트보다 방대해 무모하다고까지 여겨지고 있다. 국립보건원은 프로테우믹스연구를 시범연구과제로 진행할 계획인 반면 셀레라의 크레이그 벤터대표는 이미 “단백질연구의 세계최고가 되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길만은 “지금까지 셀레라가 유전자 정보제공을 중심에 뒀다면 앞으론 자연과학 전체에 대한 정보제공회사가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했다.
■ 정부 민간의 경쟁 통한 美 게놈연구
미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의 1차 초안 발표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유전자의 목록을 확인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각 유전자의 기능분석은 이제 시작이다.
1차 초안을 조기발표하는 것은 몇가지 정치적 배경이 있는 듯하다. 중복투자에 대한 비난 속에서 미 정부는 오히려 정부예산을 확대하는 강수를 써서 프로젝트 완성은 2005년에서 2003년으로 앞당긴 상태다. 또 클린턴대통령 재임시 가시적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조급함도 엿볼 수 있다.
어쨌든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최근 2~3년새 급진전한 것은 정부와 민간의 팽팽한 경쟁 덕분이었다. 속도전에 불을 붙인 셀레라는 1월 1차 초안 완성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자료는 돈을 낸 구독자를 제외하곤 공개되지 않았고 NHGRI 소장 프란시스 콜린스박사는 “셀레라의 크라이거 벤터 박사는 거짓말쟁이”라는 원색적 발언으로 셀레라 연구의 신뢰성을 비난해왔다.
인터뷰에서 NHGRI 피터슨박사는 “셀레라의 자료는 본 적이 없으므로 신뢰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언급을 피했지만 셀레라의 폴 길만은 “이미 완성된 초파리게놈 해독에서 셀레라의 기술적 신뢰도는 명백히 증명됐다”고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신속성’을 내세운 셀레라에게 조급함을 느끼는 정부연구는 완전한 지도완성에서도 거듭될 것 같다. NHGRI측이 ‘완전한 지도완성’을 2003년으로 고수한 반면 셀레라는 “올해 안에 끝난다”고 공언했다. 셀레라가 저널을 통해 게놈지도를 공개하면 신뢰성 논란은 어느정도 해결될 것이다.
한편 양쪽 모두의 한계는 염색체의 중심체(Centromere)와 말단(Telomere)의 DNA서열분석이 아직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때문에 게놈의 완전해독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이 부분을 뺀 나머지 부분만을 놓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중심체와 말단의 유전자는 질병, 노화 등에 관련되는 것으로 보여 여전히 핫 이슈는 남아있다.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고 암 등 질병을 극복하는 일은 ‘완성’을 못박기 어렵다. 셀레라의 폴 길만은 “10년이 걸릴 지 100년이 걸릴 지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국립암연구소 리네트 그라우즈 박사 역시 “암 원인 유전자를 밝히는 연구는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만 밝혔다. 어쨌든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게놈연구를 이미 발을 디디어 놓았다.
메릴랜드(미국)=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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