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경제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에 과소비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일이다. 대체 어떤 이들이 이 시국에 흥청망청 써대는 것일까. 저축과 투자 등 국부(國富) 확장에 매달려도 국가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한 판에 비생산적 분야에 돈이 빨려들어가고 있다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통계청이 발표한 ‘도시 근로자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지난 1·4분기중 가계의 씀씀이가 17년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면 모를까, 어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실질소득이 환란이전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실질소비는 이미 당시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증가 속도가 소득을 앞지르는 전형적인 경제망조(亡兆)의 패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위기설이 국내외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의 모럴 해저드마저 이렇듯 심각한 수준이라면 도대체 어디에 희망을 두어야 할지 난감하기 만하다.
물론 이같은 과소비가 가계 전계층에 퍼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난 환란이후 소득불균형과 빈부격차가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통계에서도 거듭 확인되고 있다. 그동안 오히려 부를 늘린 상류층, 작년이래 벤처투기 열풍에 가세해 실체도 없는 ‘부(富)의 효과’에 현혹된 일부 중산층들이 거품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과소비 행태는 세계적 부자들을 뺨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백화점에 초고가 수입품 매장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인터넷을 통한 귀족 쇼핑몰이 경쟁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아무리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잘못이냐”는 그릇된 생각이 만연하는 세태라고는 하더라도, 어려운 나라경제 사정에서 최소한의 국민의식이나 가진 자로서의 본분이 더 엄중하다는 각성이 앞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도 이런 과소비 풍조에 분명히 ‘일조’했다고 본다. 작년말부터 “IMF체제를 극복했다”고 성급히 나팔을 불어댄 것부터가 잘한 일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위기가 사라졌다고 외치는 마당이니 소비주체들의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대와 희망을 불어넣자는 좋은 생각도 정도가 지나치면 화를 부를 수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우리경제가 아직 갈길이 멀다는 현실과 그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인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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