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점에 갔다가 요즘은 로비스트 린다 김이 썼던 것과 같은 선글라스가 대유행이란 소리를 들었다. 값도 수월찮은 고가품인데도 품귀라고 했다. 사석에서 심심풀이로 찧는 입방아에서도 미모와 빼어난 옷태를 화제 삼느라 그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무슨 의혹을 받고 있는지 검찰수사가 흐지부지 된 게 옳은 건지 그른 건지, 본질적인 것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오히려 군사력 증강과 관련된 큰 사업마다 그의 입김이 작용 안한 사업이 없다더라, 누가 어디서 얻어들은 소문을 그럴듯하게 얘기해도 진위를 따지기보다는 보아하니 능히 그럴만한 인물이더라 하는 식으로 전적으로 믿어버리려 든다. 그가 의식한 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는 세련되고 당당한 이미지로 국민을 상대로 성공적인 로비를 한 것과 다름없다.
린다 김은 고급 로비스트고 신창원은 한낱 흉악한 파렴치범에 지나지 않지만 린다 김 안경의 유행은 신창원이 검거 당시 입었던 티셔스를 생각나게 한다. 신창원은 도피생활이 워낙 길었고 그가 남긴 행적중에는 미담을 엮을만한 선행도 있는 것처럼 알려지면서 군중심리가 그를 동정하는 쪽으로 형성됐고, 심지어는 의적처럼 말해지면서 검거되기를 바라지 않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건 신창원의 책임이 아니라 부패한 권력층에 대한 반발과 진저리가, 체격과 용모가 그럴듯해 보이고 제법 고민까지 하는 흔적을 도처에 남긴 도적을 통해 그런 과분한 이미지로 분출한 게 아니었을까. 동정과 아쉬움 때문에도 신창원의 체포가 대단한 구경거리였다고 해도 그가 입었던 티셔쓰까지 유행될 건 뭐였을까. 내 눈에는 싸구려 시장 물건으로 밖에 안보이는 게 꽤 고가에 외제 브랜드라 했고, 진품은 물론 시장에서도 그와 비슷한 유사품을 만들어 숫제 ‘신창원 티셔쓰’라고 이름 붙여 날개 돋힌듯 팔려 나갔다고 한다.
상품포장에서부터 영상매체가 내보내는 온갖 상품광고와 오락프로등 우리는 온종일 현란한 이미지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적인 이미지는 쾌감을 줄뿐 아니라 모방심리를 자극한다. TV 연속극도 등장인물의 운명을 쫓아 보는 게 아니라 의상과 악세서리 쫓아서 본다. 말도 안되는 얘긴데도 옷태가 나는 미모의 탤런트가 매일 갈아입고 나오는 의상을 감상하는 재미만으로도 볼만하고, 세련되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해서 뜬 프로에 나온 의상과 악세사리는 즉시 그 계절의 유행을 주도하게 된다.
때로는 그걸 입은 스타의 이름이 즉석 브랜드가 되기도 한다. 인기인이 아니라도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대는 훌륭한 인격이 좋은 인상이 되어 나타나리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현란한 이미지에 현혹된 눈은
내적인 아름다움에 끌리는 시력을 이미 마비시키고 말았다. 모임에서 유행에 한참 뒤진 옷을 입고 주눅이 안들기도 어렵지만 초라한 사람 얕보지 않기도 힘들다. 상품하고 포장이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이미지하고 속내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건만도 그렇다.
요즈음에는 TV에서도 북한의 뉴스시간을 잠깐씩이나마 볼 수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우리가 취재한 그쪽의 참상보다는 그들이 일상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잠깐씩이나마 볼 수가 있다. 거리의 모습이나 아나운서의 모습은 우리의 유행감각과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
그걸 우리의 50년대나 60년대하고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어렵게 살면서도 공산권이 모조리 붕괴할 때 홀로 그 체제를 유지하며 살아남은 그들의 진정한 속내는 뭘까? 그걸 알고 겁 내자는 게 아니라, 바로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지껏 우리끼리 해온 사람 보는 방식의 경박성은 일단 반성해 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완서·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