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이지메1318세대가 모이는 학교에선 갖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그 경험은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어른이 된 후 펼쳐갈 인간관계를 미리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건이 걱정거리 사회문제로 떠오르기도 한다. 집단 괴롭힘 또는 집단따돌림이 대표적이다.
이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뿐 아니라 미국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서 연구 조사된 사례가 나왔다. 그렇지만 이지메가 전문용어처럼 쓰이는 것에서 드러나듯 일본이 사회문제화의 원조이다.
이지메 체험기인 ‘17세’(자연사랑 번역출판)에서 이노우에 로미(井上路望)가 밝힌 내용은 이지메의 전형적인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 ‘아, 로미다! 재수 없어.’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가는 나에게 아이들이 소리질렀다. 괴롭힘은 쉬는 시간에도 계속됐다. ‘싸가지 없어.’ ‘짜증나.’ 수업 중에도 손가락질하거나 욕설을 퍼부었다. 하교길에도 괴롭혔다.
‘우리반 왕재수는 누구?’ ‘로-미.’굴복해선 안된다고 다짐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나는 끝내 울면서 담임교사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담임은 ‘정면에서 욕한 것은 아니라면서? 그렇다면 더 지켜보자’고 했다. 나는 놀랬다. 좀처럼 울지 않는 내가 울면서 호소했으니 상냥하게 충고쯤 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 이유는 경증 장애자인 오빠와 나의 강한 개성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오빠를 장애자라고 놀렸고, 나는 건방지다고 때렸다. 교사들의 무관심과 편견은 무엇보다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딸을 애처롭게 여긴 엄마는 나를 상담소로 데려갔다. 카운슬러는 나에게 이지메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이지메 따위가 조금도 겁나지 않아’ 하는 의연한 태도가 중요한 것을 배웠다.”
일본에선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주로 약자, 장애아나 지진아가 많다. 일본사회는 집단을 앞세워서 타인에게 보이지 않도록 내가 속한 집단의 수치를 말살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이것이 이지메의 원리이다.
이지메가 시작되면 약자인 개인이 주변의 방관 속에 다수인 가해학생과 맞선다. 절망감에 허덕이는 약자는 교사에게 호소하지만 사태를 숨기려는 의도와 편견으로 무시한다. ‘17세’의 저자는 편견덩어리인 교사를 괴물로 부른다. 교사에겐 가해자도 학생이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고, 결국 가해자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일본 작가 6명의 소설집‘이지메의 시간’에서 아쿠타가와(芥川)상의 수상자인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는 일본의 집단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학교에서 벌어진 폭력을 숨기려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교실 밖을 나가는 순간 이 사건을 잊어버려라.”
개인이 입은 피해가 아무리 크더라도 집단을 위해 희생하라는 강요였다. 아사히(朝日)신문이 1998년 5월 간행한 이 책은 부모와 자녀, 교사들의 심리 분석을 통해 이지메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교육만으로 풀 수 없는 사회문제라고 분석했다.
문부성의 1996년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 22%, 중학생 13%, 고등학생 4%가 이지메 당한 경험이 있고, 가한 경험은 초등학생 26%, 중학생 20%, 고등학생 6%이라고 했다. 일본사회의 이지메 대책은 다양하다.
▲교육당국-조사보고서 및 대책 마련, 전문위원회 운영, 앙케이트 및 정보 수집 ▲초중고-양호실 정보교환 ▲이지메 관련도서 발간 ▲노래 연극운동-이지메 안하기 노래 보급과 연극 공연 ▲대학 교육학부의 연구센터-시민과 함께 이지메 문제를 생각하는 모임 결성 ▲인터넷 홈페이지 운영-등록주소만 107건 ▲만담(漫談)류-도덕교육의 자료 작성과 보급 ▲어린이피난처 마련 ▲변호사회-전화 상담 ▲경찰-신고전화 운영등.
3월 14일 문부성에서 만난 초중등교육국 무라까미 다가히사(村上尙久·32) 과장은 “5년전부터 전국 2,105개 초중고교에 1,400명의 상담교사를 투입했다. 내년 3월까지 상담교육의 효과를 측정할 것이다. 또 7,000만엔(7억원)의 예산을 들여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학교장과 지역사회 봉사자를 잇는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이지메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2001년부터 사회시설과 자료를 공개, 공동 책임으로 청소년을 지도하는 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각계의 노력으로 이지메의 잔혹한 형태는 그쳤지만 음습하게 계속되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이 4월 15, 16일 이틀간 전국에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는 어린이 교육에 고민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이 50%인데 그것이 이지메라고 밝힌 사람이 48%였다.
이지메와 폭력을 쓰는 아이는 ‘일부 특별한 어린이(12%)’가 아닌 ‘보통 어린이(8%)’였다. 아직 일본에서 이지메는 큰 문제이고, 이 때문에 자살해도 여론에서 다루지 않을만큼 일상화된 모습이다.
한국에서도 왕따현상은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지만 일본의 이지메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이지메는 집단성 조직성 지속성이 강하다.왕따는 이지메보다 집단이 소규모이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이 힘의 균형에 따라 자주 바뀐다. 이지메 대상은 집단 목표에 뒤떨어지는 장애인 지진아 경우가 많은데 왕따 대상은 공부 잘하거나 난척하는 아이와 모자라는 아이 등 구분이 없다.
부모는 자기 아이 중심으로 생각하고, 교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같이 살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왕따당하기 시작하면 상담자를 찾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도쿄=최성자편집위원 sjchoi@hk.co.kr
■美 '괴롭힘 금지' 포스터 교내 곳곳 부착
미국 여학생들의 26%, 남학생들의 49%가 구타를 당한 적이 있으며, 37%의 학생이 학교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매일 2만명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폭력을 당하고, 43%가 학교화장실이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81%의 학생들은 학교가 지금보다 안전한 곳이 된다면 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미네소타주 존슨연구소가 1993년도에 6만5,000명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이 내용은 18일 하오 카톨릭대에서 열린 한국학교사회사업학회 (회장 성민선 교수) 춘계세미나에서 미시간주립대 존 해릭(57) 교수와 학교사회사업가인 부인 캐트린 해릭( 56)이 발표했다.
지난해 발생한 컬럼비아주 칼럼바인 고등학교의 총기난사사건 원인이 학교 내 괴롭힘(Bullying)이라고 밝혀졌다. 그후 미국사회는 다양한 예방운동을 추진해 왔다.
학교 안에서 어떠한 괴롭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하고, 이를 알리는‘ 괴롭힘 금지’(No Bulling) 포스터를 학교 내에 부착했다. 그리고 학급회의나 전체학생 회의를 통해 학생들이 이에 대해 토론하고,‘괴롭힘을 허용하지 않기’를 학교전체의 방침으로 수립하는데 학생들을 적극 참여시켰다.
문화 인종 민족 배경이 다양한 미국사회에서 신념이 각기 다를지라도 학교가 명백히 괴롭힘 금지 의지를 전달해서 모두의 동의를 받고, 평화와 관용 그리고 상호 존중과 이해를 증진시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선 사후 수습보다 사전 예방을 중시하는 정책을 편다.
연방정부가 재정을 지원해서 정서장애 학생들을 돕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최성자편집위원
■"10대청소년 78.1% 왕따 가해·피해경험"
이지메, 왕따, 집따, 은따, 전따, 영따, 개따…. 모두가 집단따돌림을 지칭하는 말로 특정집단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30.0%, 집단따돌림을 가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은 48.1%에 이르렀다.
78.1%에 이르는 청소년이 가해자나 피해자로서 집단따돌림에 관여한 사실을 나타낸다.
집단따돌림에는 세 역할이 있다.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집단따돌림의 비극은 가해자가 방관자들의 암묵적인 지지 속에 방어능력이 취약한 피해자를
선택함으로써 막이 오른다.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간의 역할 전도도 수없이 일어난다. 평생 간직할 아름다운 우정을 쌓아야 하는 청소년기가 투쟁으로 얼룩진다.
따돌림현상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민감해져서 상담실을 찾는다. 급우들은 말을 걸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창피만 준다. 원하는 것을 사주는등 선심을 쓰지만 따돌림의 강도는 높아진다. 가방과 팔을 툭툭 치고, 연필심으로 뒷목을
찌르며, 지우개 밀린 때를 모아서 도시락에 쏟아넣는다. 가해자는 괴롭힘의 강도를 조절해가며 반응을 관찰하고 즐긴다. 피해학생은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고, 수업시간에는 멍하며, 학교활동이 극도로 위축되어 화장실에도 가지 못한다. 배아프고 머리 아프고, 눈앞이 아득하여 그냥 사라지고 싶다.
가해청소년들은 따돌림당하는 아이들에게 그럴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이쁜 줄 아는 아이, 사소한 일에 신경 쓰는 아이, 모자라는 아이, 잘난 척 하는 아이, 뻥치는 아이, 엄마가 자주 찾아오는 아이 등등. 그렇기에 미안한 감정 뒤에 통쾌한 감정도 느낀다. 방관자들은 인권유린에 무섭고 화나지만 모방심리도 경험한다.
지속적으로 따돌림당하는 청소년들은 소심해져서 친구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신경쇠약형, 자기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자기주장 불능형, 신체상이나 능력면에서 자신감 부족형, 또는 남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자아도취형 중 하나 이상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역할로든 따돌림에 관여된 청소년들의 가족관계는 소원하거나 적대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경우가 많다. 남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정에서 얻지 못한 것이다.
사회는 가시적인 성취만 강요함으로써 따돌림당할 소인이 있는 친구를 포용할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밟고 올라서야 할 대상으로 보이게 할뿐이다.
이제 청소년들에게 서로 대화하는 방법을 가르쳐야만 할 때가 됐다. 가해청소년들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그 마음을 공감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들은 피해자가 느끼는 분노, 수치, 복수심, 자기비하, 우울 등에 대해 무감각하다. 피해자에겐 따돌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며 해결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힘과 대인기술을 길러주어야 한다.
방관자들 또한 자신의 행동이 암묵적인 동조인 것을 인식시켜서 집단따돌림의 비극이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않도록 막아야 할 것이다.
/임은미 한국청소년 상담원 상담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