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3억의 거대 중국 시장을 향한 선진국의 움직임이 한결 빨라져 조만간 다국적기업을 중심으로 치열한 시장쟁탈전이 벌어질 전망이다.중국이 미국에 이어 지난 19일 유럽연합(EU) 15개국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시장의 문이 더 열리게 된 때문이다.
협상을 주도한 파스칼 라미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지난해 11월 중국과 미국의 협상타결로 EU의 요구사항중 80%가 반영됐다”며 “이번에 나머지 20%중 16-17%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EU는 미국이 낮춰 놓은 통신·금융시장 장벽외에 석유화학과 유통업, 농산물 분야의 제한을 완화시켰다. 우선 중국은 원유 및 유화제품, 화학비료 등의 국가독점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해 BP아모코 로열더치쉘 바스프 등 유럽 기업의 진출이 용이해졌다는 게 파이낸셜 타임스의 분석이다.
기계 유리 섬유 화장품 신발 가죽제품 포도주 등 EU가 시장우위를 보이고 있는 150개 품목의 관세율을 평균 8~10%로 낮추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유통시장의 개방도 눈에 띈다. 중국은 EU측에 대형 백화점과 체인점 등의 외국인 지분제한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까르푸 등이 중국 전역에 유통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로 EU가 크게 반기는 대목이다.
EU는 또 미국이 얻어 낸 이동통신(49%)과 보험사(50%)의 외국인 투자지분제한을 높이지는 못했지만 합작법인의 허용일정 및 7개 보험업 인가를 챙겼다.
이동통신과 관련, 중국은 외국인 지분을 당장 25%까지 허용하고 WTO가입과 동시에 35%, 그 이후 3년후부터 49%로 각각 확대하겠다고 일정을 명시했다. 보험업 시장도 WTO 가입후 5년후 완전 개방된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중국은 수입관세 추가 인하 대신 EU측 기업들이 자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차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결국 이번 협상타결은 EU의 중국진출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도 24일 하원에서 대중국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지위부여법안이 통과되면 이동통신과 금융, 자동차 분야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일 공산이 크다.
PNTR 지위 부여안이 부결되더라도 중국의 WTO 가입이 좌절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으로서는 대외 개방에 따라 금융·자동차 산업의 개편과 국영기업의 개혁, 외국인투자를 활용한 서부지역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실업 증가나 기업 도산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지만 막판 협상 성사로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입지가 굳어져 이를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한편 WTO는 6월 하순 중국의 가입을 심사하기 위한 실무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며, 이르면 가을께 회원국 지위를 얻게 될 것이라고 WTO 소식통이 전했다. 중국은 이에 앞서 스위스 멕시코 코스타리카 에콰도르 과테말라 스위스 등 5개국과 쌍무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정희경기자
hkjung@hk.co.kr
■韓경제에 '위기이자 기회'
‘죽(竹)의 경제장막’이 열리는 것은 우리 경제로선 사활이 걸린 위기이자 기회. 그 만큼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업종별 경쟁력과 무역정책 등 경제전반의 궤도점검이 시급히 요구된다.
●위기이자 기회 = 중국시장의 개방은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호재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수출 주력품목이 우리와 보완적이어서 대중국 특수뿐 아니라 여타시장에서 경쟁요인이 적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중국의 WTO가입이 우리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 결과 2006년까지 향후 6년간 대중국 무역흑자가 24억달러 늘어나고 다른 나라와의 수지는 10억달러가량 악화해 전체적으로 약 14억달러 무역수지 개선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산업의 경쟁력이 강화해 해외시장에서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2년 국내 주요수출품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중국상품에 밀려 98년 대비 0.1-1.5%포인트 하락하고, 특히 전기·전자의 경우 6.6%에서 5.1%대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기술경쟁력이 대안 = 중국의 저가 경공업제품과 농산물 등 1차산품의 물량공세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기술경쟁력과 제품고급화이다. 농수산물의 경우 쌀 등 주곡을 제외하고 대중국 비교우위가 불가능한 제품에 대해서는 과감한 개방전략이 불가피하다.
반면 단기적으로 중국의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섬유·패션산업 등에 대해선 지금부터 고급화·고부가가치 전략이 요구된다. 중국시장 개방에 마냥 들떠 있는 가전이나 자동차 등 대다수 업종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진출 전략 시급 =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중국 WTO가입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보고서를 통해 “대중국 수출업종을 제조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서비스·소프트웨어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중국보다 무역관련 법규와 정책, 관행 등이 개선되고 외국기술과 노하우를 흡수한 이후의 ‘경제대국’을 예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과 부동산 금융 보험 등의 적극적인 진출전략이 요구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한편 중국은 내달하순 열리는 WTO 실무회의에서 회원국으로서 이행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고 농업보조금과 무역법 투명성 확보 등에 대한 주요국간 다자간 협상을 거쳐 늦어도 연내에 가입할 전망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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