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소송 중인 남편을 살해한 아내에 대해 검찰이 극히 이례적으로 구속을 취소했다. 살인사건 혐의자를 검찰이 불구속기소한 것은 처음이다.서울지검 동부지청 형사5부(김진태 부장검사)는 19일 이혼 소송을 내고 별거 중인 남편 이모(37)씨가 소 취하를 요구하며 흉기로 위협, 변태적 성관계를 강요하자 흉기로 살해, 지난달 23일 구속된 신모(34·여)씨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관계자는 “정당방위를 인정해 불기소 후 석방할 것인지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기소할 것인지 고심 끝에 정당방위 성립 여부는 법원의 판단에 맡기기로 결정했다”며 “남편의 위협을 막기위해 흉기를 준비해 두었다는 점을 고려, 일단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고 말했다.
검찰관계자는 또 “남편이 ‘이혼해도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고 협박하며 변태적 성행위까지 강요했다는 점에서 부당한 침해에 대한 방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과잉방위인지 정당방위인지 여부는 시대적 가치관에 관련된 문제”라며 “공개 재판을 통해 가정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 신씨에게 법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진술할 기회를 주기 위해 불구속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여성단체들은 이에 대해 불구속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분명하게 정당방위를 인정치 않은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신씨의 변호사인 ‘여성평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최일숙(崔一淑·34·여)변호사는 “가정폭력에서 빚어진 사건에서 불구속결정이 내려지기는 처음”이라고 평가한 뒤 “신씨가 성행위를 가질 경우 이혼소송이 무산돼 악몽같은 생활이 계속될 것이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등 당시의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은 정당방위 요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YMCA 앞에서 ‘무죄판결 즉각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간 ‘서울 여성의 전화’ 박연숙(34) 사무국장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는 극단적 예가 가정폭력과 관련된 사건”이라며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신씨의 구명활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달 23일 이혼소송 1차 공판을 일주일 앞두고 별거 중인 남편이 서울 성동구 성내동 월셋방에 찾아와 흉기로 위협, 옷을 강제로 벗긴 뒤 소 취하와 변태적 성관계를 강요하자 침대 밑에 감춰두었던 흉기로 남편을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의 불구속기소 결정으로 이날 오후 1시50분께 서울 송파구 성동구치소에서 풀려난 신씨는 “87년 결혼 후 줄곧 생계를 떠 맡으면서도 남편의 의처증과 폭력에 시달려 왔다”며 “당시 상황이 죽기보다 싫어 나를 방어했을 뿐 남편을 살해하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송기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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