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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칼럼] 로비양성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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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칼럼] 로비양성화 아직 이르다

입력
2000.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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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로비의혹사건이 연중행사처럼 벌어진다. 지난 해 많은 사람들을 지겹게 했던 옷로비에 이어 또다시 터져 나온 백두사업과 경부고속철도 차량도입과정에서의 로비의혹은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로비가 고질임을 알게 해준다.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당연히 될 일이든 되지 않을 일이든 로비를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정도 차이가 있지만 로비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정직하고 성실하게만 살아서는 손해보기 마련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출세를 하고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로비란 원래 자기 자신이나 그가 속한 그룹, 또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책결정자에게 접근해 유리한 결정이 내려지도록 작용하는 행위를 뜻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 청원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납세자인 국민은 공공기관에 대해 자신의 이익실현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로비는 그 권리를 행사하는 활동의 일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로비라면 정책결정자의 금전수수같은 범죄행위로 직결되며 여성이 끼게 되면 몸로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로비스트는 음성적으로 활동하면서 돈과 향응을 제공하는 하이칼라사기꾼 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로비활동을 양성화하자는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참여연대는 며칠 전 토론회를 열어, 음성적이고 불법적인 로비활동이 부채구조를 확대시키고 투명성을 저해한다며 투명하고 공정한 국책사업의 입찰과 양성화한 로비활동을 정착시키기 위해 로비활동공개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했다.

로비스트를 등록케 한 후 매년 두 차례씩 활동내역과 자금지출내역을 공개하게 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16대 국회 개원에 맞춰 ‘로비활동공개법’을 입법청원할 방침이라고 한다. 법안의 대체적인 내용은 현행 법령에 위배되는 활동 정당한 공권력의 발동을 저지하기 위한 로비 1회에 5만원 이상의 선물·금품을 주거나 총계 20만원을 넘는 향응 제공 기타 부적절한 로비활동을 금지하기 위해 대통령령이 정한 행위는 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같은 논의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4년 전에 이미 대정부질문을 통해 로비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하자고 제안한 국회의원이 있었고, 부패 추방대책을 논의하는 세미나나 토론회에서도 간간이 이런 주장이 제기됐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로비양성화는 시기상조인 것같다. 우리 사회에서는 뇌물수수와 건전한 로비를 구분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로비스트가 아니라 로비의 대상인 공직자들이다. 지금과 같은 다원주의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나 이익단체 간의 이해가 엇갈리게 마련이다.

그런 이해의 상충으로 인한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것이 정부와 의회의 주요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공직자들이 부도덕하고 정직하지 못한 상황에서 로비를 양성화하면 정당하지 못한 로비에 휘말려 공공의 선이 더욱더 훼손될 위험이 크다고 생각된다.

경위야 어찌됐든 현직 총리가 부동산문제로 물의를 빚어 사회적 비난을 받자 물러나고, 국회는 부패방지법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라에서 로비를 양성화하면 검은 돈은 더욱 활개를 치고 부패가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잇달아 터져나오는 로비의혹은 로비에 대한 법제도가 부족한 게 원인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패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의 법제정 주장에 대해 경실련은 성명서를 내고 “원론적으로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여러 여건을 고려하면 시기상조”라고 입장을 밝혔다. 금융실명제의 완전한 실시, 자금세탁방지법 제정이나 정치자금 실명제 도입등

음성적 로비를 차단하는 법제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책결정과정이 더 투명해지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공직자들이 부도덕한 일을 벌이지 않도록 규제하는 노력부터 기울인 다음에 로비를 양성화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편집국 국차장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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