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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고사의 실제] '조기정년 명퇴'에 대한 견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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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고사의 실제] '조기정년 명퇴'에 대한 견해는

입력
2000.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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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박신영우리나라가 IMF 시대에 들어섰을 때 기업의 구조 조정에 따른 명예 퇴직자수는 사상 최대를 이루었다. 시대의 흐름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나이 많은 근로자보다는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줄 알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신입 사원을 선호하는 기업의 요구에 따라 ‘조기정년’도 급격히 늘어났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의해 아직도 일을 능숙히 해낼 수 있는 많은 인력이 이곳 저곳을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내게 되고 말았다.

사람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목적은 물론 생존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아 실현을 위함이다. 일을 통해서 개인적으로는 보람을 느끼고 자신의 목표를 실현시키며, 사회적으로는 한 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자신의 직업에 투철한 장인 의식을 가지고 평생동안 몸바쳐 일을 했으며 직업을 통해 ‘나’란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곤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이를 자아 실현의 기회로 생각하는 인식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런데 IMF 시대에 기업이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실행한 명예 퇴직의 갑작스런 증가와 ‘평생직장’이란 생각을 갖고 일해온 고연령층 근로자의 조기 정년 방침은 그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빼앗은 것과 다름이 없다. 정말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할지라도 갑자기 회사에서 내보내기 전에 다른 직장을 알선해 주든지, 최소한 새로운 직업 정보라도 제공해 주었어야 한다. 이들은 직장을 잃음으로써 생활이 어려워지거나 가족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상실감과 무력감에 빠지게 되었다.

‘조기정년’,‘명예퇴직’ 현상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높은 실업률에 따른 사회의 침체와 실업자 개인의 삶의 의미 상실, 무력감, 쓰이지 못하는 많은 인력의 낭비 등등을 들 수 있다. 기업은 직장을 잃게될 근로자, 조기 정년을 앞둔 근로자에게 앞으로의 삶에 대한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 끝까지 근로자에 대한 책임을 자각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수1 신영남

우리나라는 탈산업 사회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나 가치관도 함께 많은 변화를 받게 되었다. 불과 몇십년전만 해도 오로지 경제 발전이라는 제목 아래 의식주나 결혼, 이웃 등의 개선을 삶의 목표로 삼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점점 삶의 수준이나 즐거움을 중시하게 되었고 이른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조용한 혁명 속에서 직업은 오직 생계 유지가 목적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 실현을 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직업은 그 의미와 중요성이 점점 커졌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요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IMF를 맞이하고 나라의 경제 사정이 더욱 더 어려워져서 직업을 잃게 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점차 사무적이고 능력위주인 사회가 되면서 조기 정년이나 명예 퇴직 등이 예삿일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남의 이야기 아닌 바로 내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업을 통해 기본적인 생계 유지서부터 ‘나’란 존재를 알고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등 넓은 범위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직업의 의미와 중요성이 커진만큼 그것을 잃었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된다. 하지만 정부나 기업에서는 자꾸만 늘어가는 실직자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 사정에 따라 명예퇴직 등처럼 실직자가 늘어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는 명예 퇴직이나 조기 정년은 옳지 못하다. 실직에 대한 대책 중 한 예로 어떤 기업은 실직하게 된 사람에 한하여 실직한 뒤 다른 직업을 선택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재사회화를 제공해 준다. 이렇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아니면 퇴직후 생활을 보장해주는 등의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지식과 정보가 더욱 중요시 되기 때문에 이에 발맞춰 가기 위해서는 좀 더 새롭고 좀 더 젊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의 흐름은 곧 그만큼의 경력을 의미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명예 퇴직이나 조기 정년 등이 옳기만 한 일은 아니지만 적절한 대책이 뒷받침된 뒤에는 실직이 되더라도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다.

■우수2 강민영

인간이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서나 욕구 충족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주듯이 평생을 살면서 인간이 이루어내는 업적 중에는 살기 위한 수단이나 방편으로서의 목적을 가지지 않는 것들이 많다. 직업인으로서 예술가들이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심미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 평생을 예술에 몸담는 것도 생존의 욕구와는 거리가 멀다. 제시문에서는 그보다 더 발전하여 인간이 일을 하기에 적합한 손과 사고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통해 인간이 일을 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아 실현이나 생계 유지를 위해서 직업을 갖기를 원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최근의 어려운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생계 유지도 어려워진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많은 직업인들이 명예퇴직이라는 명분 하에 자신의 자리를 잃고 있다. 물론 자신의 의지로 회사를 나와서 자기 개발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명예 퇴직자들은 최근의 어려운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자신의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사람들이다.

일을 인간의 본능이라고 본다면 그들은 인생에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서 빼앗긴 것이다. 직업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대인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자신이 이룩해 놓은 바탕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공간조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명예 퇴직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정년 퇴직할 나이가 되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계획해야 하는 많은 직장인에게서도 이러한 문제는 발생한다.

인간은 일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래서 실직당한 사람들은 인생에서 중요한 위치를 상실했다는 심리적 부담감으로 인해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사회는 명예 퇴직이나 조기 정년이 아닌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해나가야 한다.

■강평 손동현

부적절한 어휘는 글의 뜻 왜곡가능

인간은 일차적으로 신체적 존재이다. 신체를 갖는 하나의 자연적 생명체로서, 동물의 한 종(種)으로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음으로써만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이 생명 유지 활동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즉 의식적인 노력 없이 본능적 활동을 통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자연적 생존에는 아주 불리한 독특한 신체적 구조와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의도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영양공급을 받을 수 없는 존재이다. 즉 인간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 힘들게 ‘일’을 함으로써만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존재다. 철학자 칼 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을 이런 점에서 찾고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노동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그런 만큼 아주 원시적인 상태에서는 일하는 것이 곧 삶 자체의 내용이었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 점차 문화적 단계로 들어섬에 따라 인간의 노동은 이러한 원초적 모습에서 벗어나 사회적 성격을 띠고 분화하게 되었다.

근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더욱 심화하고 극단화한 노동의 분화는 노동을 삶에서 완전히 분리시켜 단순한 상품 생산의 한 요소로 비인간화시키기도 하였다. 현대인에게 노동은 많은 경우 인간의 삶을 소외시키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그러기에 노동에 시달리는 인간은 노동에 빼앗긴 인간적인 삶의 기쁨을 되찾기 위해 별도로 ‘여가’와 ‘유흥’을 찾는다. 노동의 전문화와 더불어 삶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던 ‘놀이’또한 전문화했다는 말이다.

근대 이래 노동의 성격이 변모함에 따라 이러한 인간소외 현상이 더 두드러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역시 삶 그 자체의 한 내용으로서의 노동의 본성이 아주 변질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일과 놀이가 서로 구분되지 않는 가운데 삶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상태를 이상으로 삼고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이에 근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상태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란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분화하고 전문화한 직업적인 노동을 얼마나 삶의 본령에서 멀어지지 않은 인간 친화적인 성격의 것으로 만드느냐 하는 데에 많은 관심이 기울여지고 있다. 작업 공간 및 작업 방식,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노동에 대한 대우 등에 대한 다각적인 배려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가꾸고 정하느냐에 따라 노동이 단순한 생계 유지를 위한 필요악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인간적 삶 자체의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 고양되기도 할 것이다.

노동의 질이 얼마나 인간 친화적이냐 하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동의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생긴다. 노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우선 생계 수단을 잃는다는 점에서 물질적인 삶의 기본적인 토대가 망실됨을 뜻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비록 그것이 생계 자체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인간적 삶의 의의를 크게 감쇄시킴을 뜻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화하고 전문화한 직업적인 노동이라 하더라도 노동은 여전히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 자체로서 인간적 삶의 본질적인 내용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시문에서 인간은 본래 원리적으로 일을 하게 되어 있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노동의 연원과 의의에 대해 이상과 같은 생각을 해 볼 때, 금주 과제의 논술 방향은 대체로 정해진다고 본다. 응모작 가운데 일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인간적 자아의 실현을 위한 길임을 지적함으로써 이러한 정도의 사유 수준을 보인 작품으로는 강민영, 신영남, 박신영(이상 명덕외고)의 글이 눈에 띈다. 강민영의 글에는 어휘 선택에 있어 결정적인 오류가 있는데 ‘본능’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는 “인간이 일을 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적고 있는데, 그 뜻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으나, ‘본능’이라는 말은 뜻을 왜곡시킬 만큼 부적절한 어휘다. ‘본성’이라는 단어가 그 자리에 와야 할 것이다. 신영남도 첫 단락에서 ‘탈산업사회’,‘경제발전이라는 제목아래’, ‘결혼, 이웃 등의 개선’등 의미상 적절치 못한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어 눈에 거슬린다.

좀 더 적확한 어휘 선택을 위해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어휘를 적절히 선택하고 잘 다듬어진 글을 쓴다는 점에서는 박신영이 앞의 두 사람보다 더 우수하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박신영, 신영남, 강민영의 글을 각각 최우수, 우수1, 우수2 작품으로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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