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다. 이맘 때면 나는 새삼스레 자연의 이치와 아름다움에 감상적인 기분에 잠기곤 한다.우리 동네의 오래된 공원에 봄이 찾아 들면 겨우내 움추렸던 나무들이 파릇파릇 새싹을 돋우고, 밤이 되면 향긋한 봄내음을 전한다. 가끔은 교실 창문으로 잡히는 봄풍경에 매혹돼 수업마저 놓칠 때가 있다. 이런 봄날이면 나는 어렸을 때의 우리집, 우리동네의 아름다웠던 모습이 생각나 그리움에 젖는다.
행복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서울 용산구 청파2동의 한 동네, 같은 집에서만 살았다. 그렇게에 나는 우리동네의 지난 17년간의 변천사를 다큐멘터리처럼 기억한다. 지금은 비록 비슷비슷한 모양의 다세대 주택이 즐비하고 골목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도 사라진지 오래지만 예전의 우리동네는 참으로 아름다운 동네였다.
봄은 그 절정이었다. 특히 우리집은 ‘개나리 집’이라고 불릴 정도로 뜰에는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온 마을에 봄을 알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동네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90년대 들면서 집집마다 담을 헐고 빨간 벽돌에 마당도 없는 성냥갑같은 집을 짓는 일이 도미노처럼 퍼졌다. 단지 세를 많이 놓을 수 있는 장점때문에…. 그때부터 우리동네에는 꽃향기가 사라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집마저 그렇게 된 날을 난 생생히 기억한다. 포크레인이 뜰이 주인이었던 라일락과 개나리를 무지막지한 갈퀴로 움푹 파내던 순간 정말 너무나도 속상했다. 집이 무너진 것과 함께 내 유년의 소중한 추억도 사라져 버렸다.
넓은 정원에 갖가지 꽃과 나무들, 그 안에 묻혀 소담하게 자리잡은 예쁜 우리집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엔 너무나 냉정해 보이는 건물이 불뚝 솟았다. 그 후로 새집에서 7년이나 살았지만 그전처럼 삶이 풍성하고 밝지 못한 것같다.
우리 세대의 불행과 메마른 감수성은 사라져 버린 서울의 봄 때문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늘 똑같은 풍경, 늘 똑같은 나날 속에 우리가 푸르게 젖을 틈새는 없다.
/정고은나래 신광여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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