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금지 위헌판결 이후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를 위해 학생선발권과 교육과정 편성·운영권을 갖는 자립형 사립고교제를 도입하는 등 고교평준화 정책을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평준화가 폐지되면 입시 과열이 초래되고 사교육비가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찬성
1974년 정부는 일류병 해소, 사교육비 축소, 중등교육 정상화 등을 목표로 고교평준화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폐지된 일류학교의 자리는 특수목적고및 신흥 명문고로 대체됐고 사교육비는 오히려 증가했으며 중등교육은 붕괴위기에 이르렀다. 평준화 지역 고교생들의 평균학력 저하는 지식기반 사회를 앞두고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최근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된 엄청된 사교육비와 공교육의 붕괴는 여러가지 원인이 중첩된 결과이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평준화 정책의 결과로 야기된 교실내 학력격차에 있다. 학력수준이 천양지차인 49명의 학생들을 놓고 당혹스러워하는 교사를 누가 매도할 수 있으며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이 학원을 찾아가 보충하는 것을 어찌 비난할 수 있는가. 또 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준 이상의 학습을 위해 과외를 시키려는 부모의 교육권을 막을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교육적 평등이란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함으로써 모두에게 자기계발과 성취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평준화 정책은 애초부터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적 목적에서 시행된 것이 아니라 교육과 관련된 사회문제에 대응하려는 정치·경제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제 생활양식이 다양해지고 다원화된 정보사회에서 평준화 정책은 존립기반을 상실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창의적 영재 육성이 국가발전의 바탕이 된다.
영재를 평범한 학생으로 키우고 평균학력을 떨어 뜨리는 대중정치 논리에 따른 고교 평준화 정책은 수술돼야 한다. 우선은 각 과목의 수준별 수업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 학교 수준에 따라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차등화함으로써 학교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설립목적에 따른 다양한 자립형 사립고를 육성하여 학교선택권을 보장함으로써 사교육 시장으로 몰리는 학생들과 해외로 빠져 나가는 유학생들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배규한·국민대 사화과학대 학장
■반대
고교평준화 정책을 낳은 사회적 배경이 이제는 소멸했는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학벌위주의 풍토는 여전히 살아있다. 고등학교는 서울대 합격자수로 평가받고, 중학교는 입시명문고 합격자수로 평가받고 있다.
과학 영재를 길러내겠다는 과학고등학교는 입시 명문고의 역할을 하고 있고, 외국어고등학교들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과학고와 외국어고의 졸업생들 진로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비교내신제 폐지를 둘러싼 학부모들의 시위와 학생들의 자퇴 사태를 생각해 보라. 우리의 교육 현실은 아직도 모든 시도를 입시로 귀결시키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평준화의 폐지는 다양한 교육적 가치를 수렴하는 교육내용의 풍성함으로 이어지지 않고 획일적인 입시경쟁만을 심화시킬 것이다. 학교의 설립취지와는 상관없이 입시성적에 의한 고등학교의 서열화만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자립형 사립학교는 무슨 의미를 가질까. 새로운 입시명문고의 출현 이상이 될 수 없다. 학교운영비를 제 호주머니에서 부담할 재단은 거의 없다. 학부모의 추가부담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밖에 없고 이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일반학교와 차별화한 강도높은 입시 교육을 실시할 것이다.
사립학교들의 실상을 보면 이 추가비용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학부모의 자발적인 기부금이나 수익자 부담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등록금으로 모두에게 강제된다면 가난한 집안의 자식은 입학이 원천봉쇄되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이렇게 많은 부담을 지불하고서도 전혀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다. 사학재단이 생각하는 자율은 학부모와 교사, 학생의 자율을 포함하는 학교의 자율이 아니라 재단만의 자율이기 때문이다. 사립학교 학교운영위원회를 줄기차게 반대하고 왜곡시키는 재단이 우리 나라의 사학재단들이다. 그들은 국가마저 손을 쓸 수 없는 치외법권 지대를 만들고 말 것이다. 이같은 구조속에 고교 평준화를 깨뜨린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최원호 전교조 사립위원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