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시론] 거꾸로 가는 정부조직 개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시론] 거꾸로 가는 정부조직 개편

입력
2000.05.19 00:00
0 0

새 정부 들어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는 과거의 잘못된 행적으로 물러나는 사람들에게 금전적 책임을 물렸다는 것이다. 정책기획위 위원장으로 있던 장아무개 교수에게 그랬고, 금융계의 간부들에게도 회사의 부채와 부실대출, 그리고 운영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 줄줄이 수십억원씩의 변상책임을 지웠다.그런데 왠일인지 행정부내의 잘못과 과실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사람에게는 변상책임을 지운 예가 없었다.

정부는 1998년 출범과 동시에 42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들여 사계의 권위자들을 대거 불러들여 개혁정부의 조직개편안을 만들었다. 대통령과 35년이 넘게 정부에 관여해온 국무총리는 과거의 행정조직은 낡고 무능하고 쓸데없이 비대해서 행정효율 높이고 국가적 개혁을 달성하려면 이에 걸맞는 행정조직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민은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흔쾌히 동의했다.

그런데 7일 발표된 3차 정부조직개편 공청회 시안은 그때 개혁의 명분아래 없앴던 두개의 부총리 자리를 또다시 개혁을 내걸고 부활시키는 것으로 귀결됐다. 재경부과 교육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시킨 것이다.

도대체 IMF와 같은 세기적 대환란을 거뜬히 이겨낸 경제관리 조직이 이제와서 왜 또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가. 부총리였던 재경원장직을 폐지할 당시 경제부처의 ‘옥상옥(屋上屋)’을 없애야 한다고 외쳤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교육부 장관은 무엇이 모자라 부총리가 돼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재정경제부와 교육부는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현 조직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해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했지 조직의 어떤 부분이 잘못되거나 모자라서 일을 할 수 없다는 보고는 한 적이 없다.

건국이래 우리나라 정부조직 개편의 관례는 평소 힘 못쓰고 별 볼일 없는 부처가 축소 또는 폐지와 부활의 단골메뉴가 됐고 힘 있고 각광을 받는 부처는 개혁이 아니라 혁명의 시대가 온다 해도 끄떡없이 버텨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마련된 3차 정부조직 개편시안 역시 새로운 세기에 부응하는 선진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은 알짜 부처나 해당 공무원의 힘 자랑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나마 평가할 만한 대목이 있다면 여성부 신설뿐이다.

정부조직 개편을 제대로 하려면 부총리 부활이라는 형식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공무원 조직내에 일반 행정가의 전문가 자리뺏기와 같은 시대착오적 관행을 뜯어 고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전문가 우위의 21세기 행정조직은 과연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또 민방위관리 시스템을 비롯, 합리성이 떨어지는 구시대적 행정체계에 대한 개선안을 먼저 내놓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만약 이번 조직개편 시안이 이대로 확정된다면 그 전에 정부조직 개편안을 마련하는 데 들인 42억원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금융권의 전례를 적용한다면 제1,2차 정부조직 개혁안을 준비하고 단행한 사람들 모두가 인사상의 책임을 지는 한편 그 때 소요된 국민의 혈세를 고스란히 물어내야 마땅할 것이다.

차제에 당시 개편안을 만들고 시행한 공직자와 자문 위원 등 관계자를 실명으로 공개하고 공과를 분명히 가려내야 한다. 그래서 과오에 대해서는 직위와 금전적 책임을 지우는 선례를 만들자. 이렇게 해야만 불과 2년후도 내다보지 못하는 시행착오를 당연하게 여기며 국민을 바보취급 하는 이들의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다.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지 말자.

/리규학 생명문화운동연대 조직위의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