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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 이야기] 나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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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 이야기] 나혜령

입력
2000.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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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경영자 총협회장 나혜령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을 떠올린다. 모든 자식에게 부모님은 언덕이고 교사이듯이 나에게도 부모님은 세상과 싸워나갈 용기와 지혜를 주신 분들이다. 특히 어린 나에게 아버지는 정의감과 희망이란 위대한 유산을 남겨주셨다.

21세의 나이에 서산경찰서장이 되신 아버지(나중집·1970년 작고)는 보장된 생활을 마다하고 당시 자유당정권의 부패에 분개해 야당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자가용을 몰고 승마를 즐기시던 아버지는 조병옥 유진산 신익희선생 등을 따라다니는 풍찬노숙의 삶을 스스로 택하신 것이다.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지방으로 돌아다니시느라 일년에 몇 번 밖에 집에 들어오시지 못했다. 젖먹이를 포함해 여섯 아이를 혼자 떠맡았던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 일을 시작하셨다.

살림과 동생 돌보기는 맏이인 나에게 맡겨졌다. 막내동생을 업고 나무를 해와 아궁이에 불을 피우다보면 연기 때문인지 고단함 때문인지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어느날 마침 집에 들르셨던 아버지는 작은 키에 물통을 어깨에 메고 기우뚱거리며 걸어오는 나의 모습을 보셨다.

아버지는 “혜령아. 네가 바로 다이아몬드다. 그 다이아몬드가 고통이라는 보따리 속에 꼭꼭 숨어있구나. 너는 그 보따리를 뒤져서 다이아몬드를 찾아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이 말씀은 항상 나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내가 암선고를 받았을 때 스스로 크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건강을 회복했을 때 나는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신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한번 새기게 됐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나는 그 시련이 나를 보석으로 갈고 닦기 위한 과정이라고 여겼다.

아버지는 또 여성의 역할에 대해 앞선 생각을 가진 분이셨다. 살림만 할 것이 아니라 사회에 봉사하고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기를 원하셨다. 대전중학교를 졸업하고 여학생들이 당연히 대전여고로 진학할 때 아버지는 당시 남녀공학이었던 충북고에 손수 원서를 밀어넣으셨다. 남자와 동등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신 분이다. 그분은 ‘태도나 성격도 훈련에 의해 형성된다’고 믿었다. 결혼하기 전 경성제대를 다니시던 어머니는 ‘여자가 배워서 뭐하느냐’는 친정식구들의 성화로 고향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결혼했다. 배움에 대한 갈망을 속으로 삭히셨던 어머니는 딸에게만은 그 한을 물려주지 않으려 한 것 같다.

“교육은 흐르는 물에 쓰는 글과 같고, 허공에 그리는 수채화와 같다”고 말씀하시며 ‘바르게 살아라’‘늘 책을 보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교육의 결과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인간의 품성과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시부모님도 나의 세계를 만들고 굳게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 결혼 당시(1972년) 시댁은 석회석을 생산하던 재벌이었다. 그러나 생활은 의외로 검소하고 엄격했다. 빈 손으로 기업을 일군 시아버지(이희재·1991년 작고)는 참으로 부지런하고 허식을 싫어하셨다. 전기요금 아낀다고 형광등을 쓰고, 골프에는 손도 대지 않으셨다.

새벽 5시면 기상해 지방현장에 일일이 전화를 걸고, 마당에 심은 호박 파 등에 직접 물을 주셨다. 명절날 식구들이 모여 내기화투를 하면 불같이 화를 내셨다. “돈에도 생명이 있다. 아끼고 잘 쓰야 돈이 모이는 법”이란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나혜령은 누구

1949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 충남고 졸업, 1969년 MBC 성우로 입사해 라디오‘오색의 화원’등을 진행했다. 태광화학 대표이사이며 1998년 한국여성경영자 총협회를 창립,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여고시절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어머니는 아름다우면서 강한 여성이었다.

나혜령씨는 ‘고통과 역경의 보따리 속에서 빛나는 보석을 찾으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자신이 받은 가장 큰 유산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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