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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편견으로부터 5.18을 자유롭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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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편견으로부터 5.18을 자유롭게 하라

입력
2000.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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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18 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는다. 일년 내내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언론도 이날 하루만은 망월동 풍경 한 두 컷과 함께 그날의 의미니 역사의 교훈이니 하는 수식어들로 지면 한 귀퉁이를 채운다. 일견 지난 스무해 동안 퍽 많은 것들이 변한 것처럼 보인다. 시민들에게 오래도록 씌워졌던 ‘폭도’의 누명도 벗겨지고 ‘광주사태’라는 명칭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뀌었으며 잘 단장된 망월동 묘역엔 웅장한 추모탑이 세워졌다. 희생자들에 대한보상이 실시되었고 당시 내란의 주모자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이는 현직 대통령이 되었다.

하여, 이젠 너나없이 거리낌없이 말한다. 이젠 역사의 한 장으로 정리할 때가 충분히 되지 않았느냐고, 이젠 그만 화해하고 용서하자고.

정말 이제 모든 것은 다 마무리 된 것일까. 5·18의 핵심적인 문제와 의혹들은 아직 상당부분 미해결로 남아있고, 특사로 풀려난 가해 최고책임자들은 최소한의 참회나 반성도 없이 동조자들을 이끌고 버젓이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또 군부정권의 시녀가 되어 5·18과 광주시민을 앞장서 왜곡 매도하던 이 나라의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로부터 우리는 아직껏 뼈저린 참회나 반성의 목소리조차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지금 어느 틈에 화해와 용서를 앞장서 들먹이고 있는 쪽 또한 그들이 아닌가.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아직도 국민 상당수의 마음속에 5·18은 마치 특정 지역만의 사건인양 냉담과 무관심, 편견과 오해의 장벽 저편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년 세월이 지나도록 완강하게 남아있는 비이성적인 ‘지역의 굴레’, 5·18과 김대중을 동일시하는 감정적 시각이라는‘정치적 볼모상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5·18 정신의 ‘전국화’혹은 ‘온 국민의 5·18’이 되는 길은 실로 요원할 터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광주를 넘어 지역의 굴레를 넘어 전국민이 오월 정신을 끌어안을’ 그 행복한 날은 정녕 언제일 것인가.

진정한 화해와 용서는 필히 가해자 쪽의 뼈저린 참회와 속죄가 먼저 선행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 사회와 동시대인 저마다가 겸허한 반성을 통해 상처받은 쪽의 고통과 슬픔을 우리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그것은 가능할 것이다.

정직하게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학살 책임자가 둘씩이나 대통령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을 십 년 넘도록 지켜봐야 했던 광주시민들의 심정을 우리는 한번쯤 헤아려본 적이 있었는가. 가족과 친지를 제 나라 군대의 총칼에 학살당한 것만으로도 모자라, 그 긴 세월 동안 한꺼번에 폭도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이웃들의 오해와 편견까지 참아내며 지내야 했던 그들의 배신감과 고립감, 그 이중의 고통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가.

그런 의미에서 ‘오월은 계속되고 있다’라는, 어느덧 관용어처럼 되어버린 문장을 나는 또다른 뜻으로 해석한다. 적어도 피해당사자인 광주시민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80년의 5.18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십 수년에 걸친 세월 동안 겪어야 했던 비통하고 고통스런 체험들이야말로 또 다른 깊은 상처로 남아있음을, 그리고 그 책임으로부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오월은 결코 참담한 비극의 역사만으로 남겨져서도 안 된다. 수십만 시민이 하나되어 간절히 외치던 자유와 민주주의에의 고귀한 열망, 불의와 폭력에 맞서 쓰러져간 그 처절한 싸움의 의미를 미래의 세대들에게 올바르게 전해주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에게 맡겨진 엄숙한 책임이다.

/임철우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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