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에 발간된 고정희의 시집 ‘이 시대의 아벨’속의 ‘군무(群舞)’는 꺾이는 꽃을 통해 5월의 잔인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의 오월은 1980년 광주의 5월이다. 그는 “당시는 말의 의미를 감추고 숨기는데 온갖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흐느끼듯 소리를 낮추었어도 이 시집은 광주의 5월에 대해, 또 모두 침묵하는데 대해 예민한 감성을 일깨우고 저항의 메시지를 전했다. 고정희 만큼 시로 광주의 고난을 증언하고, 시대적 절망과 모순을 극복하려 했던 시인도 드물다. 해마다 5월이 되면, 5·18 민주화항쟁 20돌이 되는 올해엔 더욱 91년 뜻밖의 사고로 타계한 그를 떠올리게 된다. 많은 시인과 작가가 광주의 5월을 작품화했지만, 그 총량은 광주 문인의 작업량에 미치지 못한다. 광주는 아직도 외로운 섬이다.
■ 작가의 일은 그렇게 되는 것인지,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도 그 무렵 광주에 정착하고 있었다. 그것이 광주항쟁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펴내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발간한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은 70년대 말 광주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소설은 80년 5월을 상세하게 묘사한 후, 그로 인해 더 확고해진 젊은이들의 20년에 가까운 사상적 편력과 실천적 행동을 짚어 간다. 수배 중에 부부가 된 그 젊은이들은 북한을 다녀온 뒤 독일에 망명하던 이 작가의 분신인 셈이다.
■ ‘기나긴 기다림 끝에 황석영의 신작소설을 읽는 감동을 어찌 다 형언할 것인가’라는 평론가의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두 권이 하루이틀만에 독파된다. 출간되기 무섭게 베스트셀러가 되어 침체된 독서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젊은이를 이념적 모색과 갈등으로 이끌던 80년대가 이 소설을 통해 역사에 내면화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은 폐쇄된 듯하던 ‘광주의 5월’의 체험과 공감을 80년대 전반의 지평으로 넓혀 준다.
/박래부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