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정보제공등 적극지원…연대교수 논문서 첫제기1979년 10·26 사태이후 신군부가 일본측과 수차례 비밀접촉을 갖고 12·12군부 쿠데타 계획과 정권탈취 계획 등을 사전통보하는 등 협조와 지원을 요청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또 일본은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전후해 ‘북한 남침기도설’ 등의 정보공급을 통해 비상계엄령 발동 명분을 제공하는 등 10·26 이후 신군부가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을 거쳐 정권을 탈취하기까지 10개월여동안 적극적인 측면지원에 나섰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돼온 ‘미국의 신군부 지원설’을 정면으로 뒤엎는 것으로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과 관련, 학계에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사실 미국 지원설은 당시 정황근거에 따라 주장돼온 것일뿐 관련 당사자들은 줄곧 이를 부인해 왔다.
연세대 국제학연구소 박선원(朴善源·37)연구교수는 17일 발표한 자신의 영국 워릭(Warwick)대 박사학위 논문 ‘한·미·일 삼각동맹안보체제의 정치적 역동성: 1979-1980년 한국의 정권 교체기에 나타난 일본의 영향력’에서 ‘일본 신군부 지원설’을 처음으로 정식 제기했다.
박교수는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스노베 류조(須之部量三) 당시 주한일본대사 등 관련인사들의 증언내용과 녹취록을 함께 공개했다.
논문에 인용된 스노베대사 등의 증언에 따르면 10·26사태 직후인 79년 11월말 전두환(全斗煥) 당시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과 허문도(許文道) 주일 한국대사관 수석공보관이 주한일본대사관 인근 보안사령부 안가에서 스노베대사와 비밀접촉을 갖고 “정승화(鄭昇和)계엄사령관을 곧 체포할 것”이라며 12·12 군부 쿠데타를 사전통보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스노베대사는 이에 앞서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 서거 불과 이틀 후인 10월28일 허씨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수사발표장에서 자신을 만나 “전두환장군이 새로운 체제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80년 5월10일 일본 내각조사실 한반도담당 에비스 겐이치(惠比壽建一)의 ‘북한남침 결정’문건을 비롯, 79년 12월이후 6차례에 걸친 일본의 북한남침설 정보제공은 국내질서 안정을 명분으로 한 신군부의 비상계엄령 발동 및 정권 장악에 큰 도움이 됐으며, 11억달러 구매계약을 체결한 대규모 일본 재계사절단과 세지마 류조(賴島龍三) 등 일본정치인의 방한러시도 신군부의 정통성 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고 이 논문은 지적했다.
박교수는 “미국은 민간정부 수립을 목표로 신군부와 지속적인 갈등을 빚은 반면, 일본은 한반도의 조기 안정과 자국의 이익 측면에서 신군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박교수는 “미·일 양국은 동북아 삼각안보 동맹체제를 유지하라는 큰 틀 안에서 제각기 자국 이익을 위해 현실적인 정책을 선택한 것일 뿐”이라며 “이 연구가 미국에 면죄부를 주거나 감정적인 일본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교수는 80년대 초반 반미학생운동의 전위에 섰던 삼민투(三民鬪) 연세대 의장 출신으로 85년 5월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해 구속되기도 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이주훈기자 ju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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