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에 밀려..구청방해..주차난까지헌혈차가 ‘왕따’를 당한다.
서울시내 도처에서 ‘사랑의 피’를 호소하는 헌혈버스가 사라져가고 있다. 시민들의 헌혈기피도 여전하지만, 매출감소를 우려한 주변상인들과 매정하게 주차딱지를 떼는 구청의 단속요원들이 헌혈버스를 쫓아내고 있는 것이다. 버스를 대신해 마련된 ‘헌혈의 집’도 구석진 골목으로 밀려나 활동이 위축된 형편이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는 벌써 두 달 넘게 헌혈버스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3월10일 구청에서 사전예고도 없이 인도의 턱을 높여 버스가 진입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중앙혈액원 관계자들이 관할구청에 4차례나 찾아가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건 “그 지역에 버스주차는 불법”이라는 대답 뿐이었다.
혈액원측은 “평소 버스를 대던 자리 근처의 연극티켓 매표소에서 통로가 좁다는 민원을 제기했다는 소릴 들었다”며 “국가지원도 변변찮은 입장인데 업소들에게마저 쫓겨나는 처지”라고 호소했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앞도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느닷없이 생겨난 택시정류장때문에 길건너편으로 버스를 옮겼지만 평소 40∼50명에 이르던 헌혈자수는 20명이하로 뚝 떨어져 버렸고 결국 10년간 이 지역에서 운영해온 헌혈버스를 철수시킬 수 밖에 없었다. 동부혈액원 최덕행(崔德行·45) 운영팀장은 “우여곡절끝에 자리를 마련했지만 골목 깊숙히까지 누가 자발적으로 찾아오겠느냐”며 푸념했다.
현재 서울시내 곳곳에 나가있는 헌혈버스는 모두 19대. 96년 30대를 넘던 것에 비하면 4년만에 절반 이상 줄었다. 혈액원은 차가 나가지 못하는 지역에 아예 헌혈의 집을 설치, 대체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예산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1개소당 1억 5,000만원 정도의 설치비에 매달 운영비만 1,000만원 이상 소요돼 차가 못나가는 지역마다 당장 헌혈의 집을 세울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걱정했다.
행인을 상대로 헌혈을 호소하는 권장요원은 더욱 기피대상이다. 헌혈의 집 자원봉사자 김모(40·여)씨는 “요즘 사람은 잡아끌지 않으면 절대 헌혈하지 않는다”며 “뺨까지 맞아가며 온갖 수모를 당하지만 우리라도 없으면 헌혈량이 절반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대한적십자사 이응호(李應浩·57) 혈액관리국장은 “현재 우리나라 헌혈인구는 250여만명으로 혈액자급자족 수준인 320만명에 크게 못미친다”며 “헌혈을 당장 기피대상으로 여기기에 앞서 국민건강 차원에서 배려할 줄 아는 의식 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입력시간 2000/05/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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