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쇼 기획연출가 김소연다음 시즌에 유행할 상품의 경향을 미리 알고 싶으면? ‘쇼(Show)’를 가보라. 자동차라면 모터쇼, 컴퓨터 소프트웨어라면 컴덱스쇼, 의상이라면 패션쇼. 현대의 생산자와 소비자는 ‘쇼’라는 시끌벅적한 이벤트를 통해 신상품을 알리고 유통시키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데 익숙해 있다. 남보다 한 발 앞서 유행을 따라잡으려면 이젠 이벤트를 찾아다니는 게 상책이다.
패션이벤트 전문업체 ‘디자이너클럽’의 기획운영팀장 김소연(29)씨는 ‘패션쇼’를 만드는 일을 한다. 공식 직함은 ‘패션쇼 기획연출가’. 모델 캐스팅부터 의상 구성, 조명 및 음향 설치, 무대 배치와 행사 진행에 이르기까지 패션쇼의 모든 과정을 관할하고 지휘한다. 패션쇼라는 이벤트의 ‘총감독’인 셈이다.
모델 출신에 패션쇼 기획연출 경력만 7년째인 김씨는 여성으로선 손꼽히는 ‘베테랑’이다. 지금까지 직접 기획, 연출한 패션쇼만 줄잡아 300여회. 대규모 관객을 동원해 화제가 됐던‘99 서울국제패션(SIFAC) 컬렉션’을 비롯해 ‘99 구찌(Gucci) 살롱쇼’, ‘디자이너 박지원 2000 컬렉션’‘알마니(Emporio Armani) 2000 컬렉션’등 굵직굵직한 패션쇼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지난 해 5월 헤어케어 브랜드 ‘로레알 누앙셀 아하’의 국내 출시기념 이벤트를 맡았을 때는 의상쇼를 접목시킨 독특한 형식의 헤어쇼를 기획, 눈길을 끌었다. 헤어쇼하면 으레 실수요자인 미용실 주인들을 모아놓고 새로운 커팅기술을 시연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김씨는 행사 자체를 아예 일반인들을 위한 대중 패션쇼로 탈바꿈시켰다.
각양각색의 헤어스타일을 한 모델들이 그에 어울리는 옷차림으로 다양한 조화를 보여주는 형식이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직접 홍보 방식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이날 행사는 일반인들의 높은 관심 속에 성황리에 끝났다. 그리고 몇달 안돼 이 제품이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헤어브랜드’가 됐다는 기분좋은 소식도 듣게됐다.
176㎝의 늘씬한 키에 시원스런 외모를 지닌 그는 대학(고려대 미술교육과) 3학년 때 아르바이트 삼아 의류회사의 광고모델로 활동한 것이 인연이 돼 패션쇼 기획분야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모델보다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획연출 쪽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는 일이 ‘머리’만 갖고 되는 일은 아니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출연진만 100명이 넘는 대형쇼를 감당해내려면 ‘체력’은 필수다. 패션쇼가 몰리는 봄이나 가을엔 한달 평균 15건 내지 20건의 쇼를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 더구나 행사마다 최소한 2주간의 준비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이 몰려 있을 땐 밤샘 작업을 밥먹듯이 해야하고, 성수기엔 한달에 사나흘도 집에 들어가기가 힘들다.
워낙 정신없이 일에 쫓기다보니 김씨는 시간 관념 하나는 누구보다도 철두철미하다. 그가 항상 들고다니는 메모장에는 그날 그날의 일정표가 분초 단위까지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6월 30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리는 ‘디자이너 이영희 패션쇼’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김씨는 “모델이 3초만 무대에 늦게 나와도 행사 전체가 어그러지고 무대 영상이 0.1초만 늦게 터져도 음향과의 조화가 깨지는 법”이라며 “두번의 리허설만으로 행사의 전체 진행과정은 물론, 모든 모델들의 얼굴 생김새와 의상, 액세서리 등을 하나의 오차도 없이 풀세트로 머리 속에 집어넣을 수 있어야 패션 연출가의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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